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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15. 2019

눈 내리는 어느 하루



안올 것 같았던 하얗고 작은 눈이 내려 머리에 조금씩 쌓인다. 조금 전에 감은 머리는 얼어서 가닥가닥 생명력 있게 뭉쳐있다. 이제 더워서 못 입어, 하고 장롱에 집어 넣으려던 무스탕을 꺼내 입고 어제 주문해서 오늘 도착한 책을 한 권 가지고 카페로 향한다.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명저라고 생각하는 오종우 교수의 <예술 수업>을 출판한 출판사 어크로스가 펴낸 책이기도 해서 믿음이 갔다.

외국 작가의 책을 좋아하고 요즘 글보다는 19세기~20세기 초반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얼마 만에 사는 한국 작가의, 그것도 '비소설'인지 모르겠다. 새로 도착한 책의 책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는 리스본에서 사온 책갈피들 중에 하나를 골라 꽂아 넣는다.


목감기가 걸려 며칠 밤 기침하다가 좀 나을 기미가 보이더니 이제 코로 옮겨왔다. 미세먼지가 적다고 해서 그런지 상쾌한 공기를 최대한 많이 마시고 싶지만 코와 입천장 쪽이 알딸딸하다고 해야 하나.



책을 두루두루 읽어본다. 책의 서문, 나쁘지 않다. 크게 감흥이 있거나 흥미롭지는 않다. 저자가 갈색으로 인용한 짧은 구절 두 개. 고르고 골라 서문에 소중하게 담긴 것일 텐데, 나는 왠지 그 감성이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책의 끝 부분, 에필로그가 눈에 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처럼 저자는 전도연을 얼마나 닮은 것이길래.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결국엔 꿈이었다는 역시나 허무한 마무리. 중학교 때 논술학원에서 내준 글짓기 숙제에 일어나보니 꿈이었다 라고 마무리 한 글이 너무 뻔하고 창의적이지도 않았다고 평가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튼, 전도연이 나오는 상상 혹은 꿈을 통해 출판할 책이 오독될 두려움이 와 닿는다. 이조차 오독일 수 있지만.


교수님도 <레이디 버드>와 <소공녀>를 흥미롭게 보셨구나. '동네 극장에서 나는 한갓 추리닝맨에 불과했다'는 표현과 내용이 재미있다. 중년 남자가 혼자 극장에 가서 레이디 버드와 소공녀 감성을 즐기는 장면을 상상한다. 저자는 여대에서 가르치며 만난 여자 대학생들을 '레이디버드들'이라고 표현했다. 에너지와 호기심이 가득하며 어디로 떠나야 하는 레이디버드들이라며. 영화 레이디버드 속 레이디버드는 나와는 달랐지만 영화를 보며 내 안의 또 다른 레이디버드를 발견하며 미소 지었던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홍상수 영화에 대한 짧지 않은 글도 인상적이다.


그(홍상수)가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타락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해석과 행동이 엇박자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홍상수 영화를 다수 접한 나는 이 문장이 꽤 명쾌하게 다가왔다. 홍상수 영화를 희미하게 몇 가지 떠올려본다. 가장 최근에 본 것은 <풀잎들>인데, 풀잎들 속 카페에서 안재홍인가 하는 남자 배우 앞에 앉은 여자 배우의 연기가 떠오른다. 저 여자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대사와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과잉되어 어색해보이는 연기는 감독이 의도한 것인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독일에서 김민희를 같이 따라다니던 아는 언니? 역할의 여자 배우가 의도된 건지 아닌지 모를 국어책 읽는듯한, 발연기인가 발연기스러움을 연기하는 것일까 늘 풀리지 않는 의문의 몇몇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을 끄적인 노트를 펼쳐 본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날것의 감정이다. 나는 저자의 적당한, 정제된 솔직함, 그래서 유머러스함이 부러우면서도 날것 그대로의 감정, 추한 감정 역시 활자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게 평소 생각이다.


감기 기운이 남아 있어 뛰진 못하더라도 1시간이라도 걷기로 하고 러닝머신에 오른다. 경도는 8%, 속도는 5.5에서 4.4 정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폰을 낀다. 어젯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완독한 1Q84 3권의 여운이 아직도 길게 남아있다. 어느새 길어진 머리를 하나로 가볍게 묶고 러닝머신에서 걸으며, 임무를 마치고 숨어 지내며 가벼운 운동을 하는 스포츠클럽 인스트럭터 아오마메를 상상한다. 비슷한 건 키와 나이 뿐인데 길을 걷다가도 문득문득 나는 아오마메에 이입한다. 어쩌면 아오마메와 후카에리 사이의 어딘가.


길에서 별것 아닌 우연으로 마주친 사람들보다, 지나가저린 과거의 인물이나 책에서 읽은 인물의 이미지가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나 역시 현실이라고 간주되고 형이상학적으로는 무의미한 살과 뼈로 이루어진 수많은 사람들보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과 그림에서 보았던 인물들에게 더 큰 친근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덴고와 결국 다시 만나 하나의 달이 뜬 세계로 돌아오다니 얼마나 기쁜지. 쫓겨 다닐 때는 함께 아슬아슬해하고, 얇은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찾아 오르는 장면에서는 나까지 춥고 숨 가쁘다. 그리고 같이 해방감을 느낀다.


흰 눈이 꽤 펑펑 내리더니 결국 얇게 쌓여 있다. 얇게 쌓인 눈이지만 나름의 뽀드득뽀드득 소리는 난다. 코가 막혀서 숨이 제대로 안 쉬어진다. 침대 속에 들어가 프루스트를 읽으며 홍차를 마시는 아오마메처럼, 캐러멜 향 가득한 홍차를 마시며 몸을 따뜻하게 녹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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