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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24. 2019

살찐 것은 살찐 것이다


오랜만에 본 친구에게 “와~~ 우리가 얼마 만에 보는 거지? 어딘가 좀 달라진 것 같다! 음... 살이 좀 찐 건가?”라고 한 적이 있다.


나중에야 그 친구가 살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어 그 말을 듣는 상대방도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음을 염두해야 되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살이 찐 것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비교적 없는 편인 것 같다. 평소 제일 좋아하는 코미디언이 유민상과 김구라, 김수용처럼 덩치가 큰 사람들이다. 단체방에서 보통 체중의 사람이 말랐을 때와 살이 쪘을 때를 포토샵한 사진을 보여주며 사람은 확실히 살을 빼야 된다는 취지로 짤이 올라왔을 때도 나는 살쪘을 때가 훨씬 나아 보인다고 말하니 특이하다는 반응을 받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살찌는 것에 대한 생각이 부정보다는 긍정에 가까운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나는 작년에 처음으로 60킬로를 넘어보기 전까지는 평생을 말라깽이로 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20킬로가 안됐고 중학교 때도 30킬로대였으며 고1이 돼서야 40대 초반의 몸무게를 달성했다. 와 내가 드디어 40킬로를 넘었구나라고 스스로는 좋아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삐쩍 마른 아이 취급을 받았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50킬로가 안되다가 나잇살의 영향인지 20대에는 자연스럽게 50킬로대를 유지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나 어른들이 “와 정말 말랐다.”라고 한 마디씩 표현할 때 형식적으로는 부럽다는 취지라는 듯이 말하면서도 그 내용은 삐쩍 말라 보기 싫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그래서 항상 나는 살이 찌고 싶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60킬로에 도달해 운동을 결심한 것도 보기 싫어서 살이 빼고 싶다기보다는 높은 체지방률과 체력 저하로 인한 건강의 목적이었다. 확실히 살이 찌니 걸을 때 몸이 무겁고 누가 자꾸 뒤에서 붙잡는 것 같은 기분이 싫었다. 물론 엄마는 살이 찐 내가 보기 싫다며 운동을 종용한 것이지만 나는 살이 오른 내 모습을 사진이나 거울로 봐도 왜 더 못나 보인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나는 살이 찐 사람이라든지 키가 작은 사람이라든지 하는 그 사람의 특징을 설명하는 표현도 비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항상 하루키 책을 읽고 있어서 하루키의 사람 묘사에 익숙해서 그런것인지). 오히려 살이 찌거나 키가 작다고 하는 것이 비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그 사람을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살이 찐 것 같아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 살찐 것을 굳이 짚어주며 열 받게 한다는 의도가 아니라 그 사람의 변화를 알아챈 관심의 표현 같은 거였다. 오 염색을 했네, 파운데이션을 바꿨네 살이 빠진 것 같네 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살이 찐 것이 못나보였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다수 사람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내가 살이 찐 것 같다고 말한 그 친구도 내가 평소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인 걸 알았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직장 내 한 사람이 자기가 살이 너무 쪄서 못나보이고 자신감이 없다며 비싼 다이어트약을 먹으며 살을 10킬로 이상 뺐다. 주위 사람들이 예뻐졌다며 한 마디씩 했다. 하지만 나는 딱히 ‘미’의 차원에서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눈으로 보기에 다리가 얇아지긴 했지만 예쁘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에게 느끼던 미적감흥과 별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내 생각을 구구절절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민감한 주제일 수 있다고 하니 자제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재작년인가, 남성인 친구 두 명을 만나서 위의 내용을 말한 적이 있는데, 한 명은 나보고 오지랖퍼라고 말했다. 서로에 대한 지적을 가감 없이 말하며 서로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으며 넘기는 사이다.


“니가 오지랖퍼네. 남이 살이 찌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굳이 그런 말을 안 하면 어디가 쑤셔? 너는 살찌는 게 괜찮다고 생각해도 본인이 아닐 수 있는데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거지. 사회생활에서는 그냥 분란이 일어나는 말은 애초에 안 하고 입을 닫는 게 나아. 뭐 그리 힘든 길을 걸으려고 하니.”


또 한 친구는 내가 살이 많이 쪄보지 않아서 살찐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는 취지로 말을 해줬다.


“니가 살찐 사람을 알아? 살쪄서 사람들이나 이성들의 관심을 못 받고 그렇다면 너는 살이 찌고 싶겠어? 너도 막상 살찐 사람이 너한테 좋다고 하면 관심 안 가질 거잖아.”라고 말했다.


그런데 난 이 말에는 수긍이 가지 않았다. 만일 내가 살찐 어떤 사람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살이 쪄서가 아니다. 매력을 느끼는 요소가 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과 관계없이 그냥 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살을 빼고 온다고 해도 똑같이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도 모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입장을 고려않고 내 의도를 알아서 알아주겠거니하고 말하는 것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미적 관점에서 ‘추’라는 감정을 담고 있지 않다고 다른 사람도 그렇지는 않다. 친구의 조언처럼 오지랖퍼가 되지 않기로 한다. 또, 내가 말랐다는 얘기 듣는 것을 싫어했던 것도 반추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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