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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Dec 22. 2021

딸아, 나의 할머니를 귀하게 여겨다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 받는 걸 보고 싶지 않거든.

네 살 딸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한테 이상한 냄새가 나."


아마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당황했고 씁쓸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할머니와 아빠는 멋쩍은지 이렇게 맞대답했다.

 

"할머니한테 왜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아빠는 다독다독 훈계를 하였지만 아이는 입이 삐죽 나왔다.  



딸아, 할머니 손에서 엄마가 자랐단다.



맞벌이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유년시절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10년 가까이 할머니와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아빠가 레지던트를 거쳐 개인병원을 개업하기까지 엄마는 우리 가정의 생계를 담당했다.


유년 시절을 돌아보면 우리 집은 늘 분주했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0교시 수업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했고, 남은 집안일은 할머니가 도맡아 했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는 주중은 우리 집에서 주말은 시골에서 보냈다. 지금은 흔한 소위 자녀를 위한 "주말 부부" 생활을 오래 하였다.


할머니는 내 인생에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따뜻하고 천사 같다. 모든 할머니가 그렇듯 할머니는 내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준 사람이다. 나 또한 유년시절 할머니를 열렬히 사랑했다.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엄마 같았던 시절이 있다. 할머니와 헤어지는 금요일 그리고 다시 만나는 월요일 우리 집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마치 이산가족 상봉하듯 할머니와 나는 얼싸안고 울었다. 헤어져서 슬프고 만나서 기쁜 우리의 애착관계는 남다르긴 했다. 어쩌면 이성적이고 똑 부러진 부모님과 달리 정 많은 할머니가 나와 더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눈물 많고 마음 약한 나의 성향과 성격이 주양육자였던 할머니 때문은 아닌지 염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더 강한 사람으로 키우고자 노력했다. 먹히지는 않았지만.



사실 나도 할머니가 부끄러운 적이 있다.



한 번도 표현한 적은 없지만 사랑했던 할머니가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아갈 때에 준비물을 챙기지 않았다고 버선발로 달려 나온 할머니가 부끄러웠다. 젊은 엄마들 틈에 우산을 들고 나온 할머니가 부끄러운 적이 있다. 그리고 부러웠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늘 따뜻하고 맛있는 간식으로 반겨준 엄마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엄마는 사표를 냈다.



내 인생에 빛이 났던 시절을 기억한다. 첫 번째 빛은 엄마가 사표를 내고 우리 집의 진정한 "안주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진짜 "엄마"를 만났을 때다. 사실 엄마는 재직 중에도 우리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유치원 소풍 때에도 선생님과 기사 선생님의 몫까지 김밥 싸는 것을 빼먹지 않았고, 운동회며 발표회며 학교 행사는 어떻게 해서라도 참여했다. 야자를 지도하는 날에도 나의 숙제를 봐주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과였다.


"남의 아이들 가르치다가 내 아이들을 놓칠 수 없어."


방학 기간이 끝나고 학교로 복귀한 엄마의 빈자리를 느낀 다섯 살 동생이 말을 심하게 더듬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 주가 지나가기 전에 사표를 냈다. 엄마의 퇴직으로 동생은 금세 좋아졌으며, 없던 일처럼 안정을 찾았다. 13년 교직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고 그날을 기점으로 할머니와의 동거 생활은 끝나게 되었다.


 

할머니한테 냄새가 나. 그래도 말이야.



나는 할머니의 인생이 참 서럽다. 본인을 위한 삶을 하루도 살지 않았으니 말이다. 여전히 내가 초등학교 때 신었던 양말을 신으신다. 그래서 난 할머니가 참 가난한 줄 알았다. 그런 할머니는 증손녀를 만날 때마다 몇 십만 원을 주머니에서 꺼내 기쁨으로 건넨다. 본인을 위해 양말 한 켤레가 그렇게 아까운 노인은 지금도 증손녀에게 더 주지 못해 아쉽다.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은 것이 많은 이의 소망이거늘 노인이 되면 슬픈 순간을 수없이 맞이한다.


딸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고민이 되는 밤, 나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라떼는 말이야"  "내가 왕년에는"


우리의 노인들이 옛날이야기를 하면 그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귀 기울이자. 이미 익숙한 레퍼토리일지라도 같은 이야기가 또다시 반복될지라도 나의 부모도, 나도 언젠가 맞이할 순간임을 잊지 말자.


서러운 생각에 마음이 어려웠을 할머니에게 전하고 싶다.


"할머니 사랑해요. 부디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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