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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an 21. 2022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롱런(Long-run) 하는 자가 멀리 간다.  

새해를 맞이하며



새해를 맞이해서 다시 '미라클모닝러'가 되기로 다짐했다. 무언가 이루겠다는 생각보다 '홀로시간' 확보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열정 대학생은 아니지만 종종 찾는 김미경 선생님의 미라클모닝 챌린지가 내게도 문을 두드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새해 목표는 첫날 무너졌다.



친정에서 달콤한 연말 휴가를 보내고 집에 오자마자 몸살이 났다. 다시 마주해야 할 살림, 독박 육아(이 단어는 쓰고 싶지 않지만)인데 가정보육, 이사 준비 등 그저 감추고 싶었던 일들을 마주하기도 전에 번아웃이 왔다. 아.. 순간의 달콤함 뒤의 후유증은 참 오래간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큰 일을 겪고 나면 인생의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유년시절부터 호강하고 자란 세월이 길었기에 작은 문제와 어려움에도 호들갑을 떠는 편이었다. 이제 여러 고된 일을 겪고 보니,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더라도 이전보다 힘을 빼고 '해결방안'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한다. 고난은 늘 어렵고 힘들지만 성장을 도모하고, 인내에 필요한 한계점(threshold)을 높여준다.


이 년간 육아에 몰입을 했더니, 나의 성장에 대한 갈증이 있다. 자기 계발을 위해 달려가는 이들을 보면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내게 말한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하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이란 말이 작게 느껴진다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하자'라는 말을 달리 해석한다면 '선택과 집중하자' 또는 '우선순위를 정하자'라고 할 수 있겠다.


재작년 아이가 자는 시간, 새벽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경제 공부를 했던 기간이 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양과 열정이 아니었기에 몇 달 뒤에 나가떨어진 기억이 있다.


모두에게 균등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해야 할 업무, 중요한 일, 하고 싶은 일은 가지각색이다. 그러니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본업을 비롯해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해야 하는 일은 가정보육이며 아이와 퀄리티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의 우선순위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자기계발 등)을 계획하고 수행하면 된다.


'꿈을 접자'가 아닌 그것들은 유지하되(오히려 더 큰 꿈을 꾸되) 상황이 올 때 바로 실행할 수 있도록 조금씩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하자’는 것이다.



변화가 잦은 시대



사회에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고서야 시대의 분위기와 트렌드는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대학 졸업할 무렵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청춘의 아픔과 어려움을 공감해 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이후에는 'You Only Live Once (YOLO)'에서 따온 욜로족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욜로족은 더 이상 보기 어렵다. 물론 파이어족이 생기긴 했지만 그들은 욜로족과 다른 차원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코로나 팬데믹 영향이 컸을까? 열심으로 아침을 깨우고 공부하고 투자하는 시대가 왔다. 기회를 잡은 자는   기대를 노리고, 탑승하지 못한 자는 다음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또한  3.0.이라는   없는 시대가 생각보다 가까이 와있다.


결국 사회의 트렌드는 또 바뀔 것이다.

너무 열심히 달린 사람들과 사회는 피곤함을 느낄지 모른다.



미라클모닝이 불편한 사람에게



미라클모닝에 합류하지 못해 여전히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전하고 싶다.


"먼저 나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나의 속도를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나의 미라클모닝이 시작되었다.

다른 이들처럼 네시 반에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는다.


단, 아이와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가 일어나기 한 시간 전에는 먼저 깨어 있으려고 한다.


나는 한 시간의 '홀로시간'의 기적을 안다.

이 시간을 통해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알 수 있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산다.

우왕좌왕하지 않고 여유 있게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이에게 한층 너그러워진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바로 꾸.준.히. 롱런(Long-run)하는 힘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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