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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Feb 12. 2021

유태오, '새해전야'와 '편견' 그리고 '철학'

[인터뷰] 유태오, '새해전야'와 '편견' 그리고 '철학'


유태오.(제공=에이스메이커)


다음은 2월 11일에 나간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편견 없이 접근하는게 저의 철학이에요."


영화 ‘새해전야’(감독 홍지영)이 설 연휴를 맞아 10일 개봉했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다가오는 새해를 준비하는 시기인 일주일이 누구에게는 들뜨기도 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인생의 비수기를 끝내고 새해에 좀 더 행복해지고 싶은 네 커플의 두려움과 설렘 가득한 일주일을 담은 ‘새해전야’에 유태오는 패럴림픽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수인 ‘래환’을 맡으며 ‘오월’(최수영 분)의 오랜 연인으로 나온다.


유태오는 지난 3일 오후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기한 ‘래환’의 실제 모델로 2018 제12회 평창 동계 패럴림픽 스노보드 국가대표 박항승 선수를 언급했다. 그는 “홍지영 감독님이 원한 연출과 제가 생각한 ‘래환’의 해석이 똑같아서 편했다. 편견 없이 캐릭터에 접근하려는 게 저의 철학이다. 편견 없이 연기해야 공감성을 가지고 이 캐릭터를 감쌀 수 있고, 이 캐릭터로 새로운 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정말 편견이 없어서 연기하는 것에서 갭 차이가 있다. ‘래환’의 캐릭터에 편견이 없으면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지만 편견이 생기면 불쌍하게 생각해 도움을 주려고 연기할 것이다. 그런데 박항승 선수에 대해서 알아볼 때 "나는 보호자 필요 없어"처럼 쿨하고 독립적인 분이었다. 제가 ‘래환’을 연기할 때 극복 과정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해석을 할 필요 없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고 사회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니 시나리오 속에 편견이 하나도 없어서 좋았다”고 전했다.


극 중 ‘래환’과 ‘오월’은 프러포즈를 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에이전시 계약이 들어오고, ‘래환’의 상황을 이용하려는 회사를 두고 ‘오월’과 충돌이 생긴다. 유태오는 “‘래환’은 털털하고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편견으로 비치는지 상관이 없지만 오월한테는 어떻게 비칠까 신경을 쓴다. 좀 더 순수하고 털털한 운동선수니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연기를 했고 어려운 점은 없었다. 최수영과 만났을 때도 편했고, 우리 둘의 이야기는 다른 커플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오래 사귄 커플이다 보니 둘 사이를 지탱하고 있는 단단한 이야기로 차별성을 두려고 했다. 또한 ‘래환’ 캐릭터 자체는 본인이 장애가 있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다. 찾아보니 많은 패럴림픽 선수들이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선수보다 후천적인 사고로 장애를 가진 분이 많았다. 이런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극복하고 힘든 과정을 겪고 이런 사람이 됐다고 만들어 내는 게 필요했다. 위축되지 않고 긍정적으로 헤쳐나가는 모습을 ‘래환’에게 녹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유태오.(제공=에이스메이커)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 농구선수의 꿈을 키웠던 유태오는 부상으로 꿈을 접었지만, 연기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만나게 됐다.


“13살부터 20살까지 독일에서 농구 선수로 지냈어요. 실제로 한국 사람 처음으로 NBA에서 뛰는 게 꿈이었지만 제가 농구 선수로서는 큰 키가 아니었어요. 그 부분을 순발력으로 채우려고 미친 듯이 운동을 했었고 키가 180이 넘어도 덩크하는 사람이 많이 않은데 저는 덩크도 했죠. 한국에서 스카우트를 받고 합숙 제안도 받았지만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두 번이나 수술을 했어요. 이때 제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물론 패럴림픽 선수같은 경험이 뭔지 알 수 없지만 감정적으로는 뭔가 잃었다는 느낌을 알아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고 싶었고 아버지께서도 축구계 에이전트 일을 하셔서 운동선수의 삶을 살다가 부상을 당했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다시 편하게 걸을 수 있으면 고맙게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6개월간 우울증에 빠져 살고 수술 후 회복도 좋지 않아 목발을 짚고 살았죠. 그런데 이걸 극복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 연기를 사랑하게 된 경험을 ‘새해전야’의 ‘래환’에게 녹였어요.”


유태오는 독일에서 한국으로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너는 왜 치열하지 않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밝혀 놀라게 했다. 이어 그는 “독일은 사회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장애나 노숙자, 일이 없어도 복지 시스템으로 돈과 집을 주고 학비를 대주다 보니 생존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 보니 워라밸처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있는데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제가 몰랐던 한국 사람들의 성격이 있었다. 그때 많은 오해가 생기고 상처를 받았지만 이런 오해로 타인이 하는 말에 이해심이 생기고 감싸주면서 정체성도 생겼다. 이때 "너는 왜 이렇게 치열하지 않아?" "좀 더 집요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는데 살던 배경 속에서 생존 본능에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치열한 게 뭔지 몰랐다. 28, 9살의 사람이 새로 뭔가 배우려니 엄청 힘들었다. 문화적인 오해가 있었다. 이때의 경험이 저에게 자양분이 된 거 같다”며 지난 상처 속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유태오.(제공=에이스메이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오래 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영화 ‘새해전야’는 몽글몽글한 감성을 깨워줄 영화이다. 장기간의 거리두기로 인해 마음의 거리까지 멀어진 요즘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작품으로 유태오는 그의 부인 니키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제가 실제로 사랑하고 있는 유일한 분이다. 진짜 사랑은 누군가와 소통이 되고 나를 이해받는 느낌이 있는 건데, 이해받았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가치관이 같다는 것이다. 이해가 된다는 것은 이해로 공감을 하고 또 연민도 있고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할 동력이 되는 거 같다. 저와 니키리는 "우리는 한 몸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14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동안 소통하고 많은 것을 극복하며 뼛속 깊이 알게 되는데 10년은 걸리더라. 다른 커플은 더 빠를 수도 느릴 수도 있겠지만 이제야 많이 편해진 거 같다. 한 몸이 될 때까지”라며 사랑과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 ‘새해전야’ 언론 시사회 후 기자 간담회와 인터뷰를 하면서 유태오는 ‘철학’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철학적인 질문이네요” “철학적으로 생각하면”이라는 말을 하는 그를 보면서 프리드리히 니체, 칸트 등 저명한 독일 철학자를 낳은 곳에서 오랜 시간 살다 온 사람이라 그럴까 추측을 해봤다. 찾아보니 유태오는 2019년 잡지사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버티고’ 촬영 당시 철학자 하이데거 논문을 읽은 일화를 말하며 “호기심이 생기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스타일이에요. 당시 언어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던 시기였어요. '진수'를 연기하면서 인간의 본능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 거죠”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가 쓰는 단어와 말의 깊이가 유태오의 삶을 어떻게 채웠을지 궁금하게 만들며 앞으로 더 완숙해질 유태오란 사람의 깊이가 기대된다.


한편, 영화 ‘새해전야’는 김강우, 유인나, 유연석, 이연희, 이동휘, 천두링, 염혜란, 최수영, 유태오가 극장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https://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4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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