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 신맛은 싫고, 한 여름이든 겨울에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
“달달한 초콜릿은 하루에 하나씩 꼭 먹어야 하지만, 음식이 달달한 건 싫어. 달아야 할 음식이 단 건 괜찮지만 달지 말아야 할 된장찌개나 순두부찌개! 이런 게 달다면 그 자리에서 토할지도 몰라.”
“내 화장대에는 향수가 10가지는 있는 거 같아. 매일 그날의 기분에 맞춰서, 그날의 TPO에 맞춰서 향수를 바꿔 뿌리지. 립스틱도 마찬가지야. 가방에 기본 서너 개는 넣어 다녀. 오전, 오후, 저녁 다 바르고 싶은 컬러가 달라.”
누군가 위와 같이 말한다면 누구는 ‘자신의 기준이 있군’이라고 생각하고, 또 누구는 ‘되게 까다롭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전에 나는 주로 후자였다. 20대 초반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들이 자신의 취향을 확고히 들어낼 때마다 ‘주관이 뚜렷하네’보다는 ‘뭐가 그렇게 좋고 싫은 게 다양해.’라고 속으로 내심 그들을 까탈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서른이 된 나는 어떠냐 묻는다면, 내 취향에 까다로움에 관해서 소논문으로 제출할 수 있는 정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 내 모습을 예전의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보면 이렇게 말하겠지. “더럽게 까다롭네.”
왜 점점 내 생각이 변해가고, 내 취향이 점점 까다롭고 확고해지나 생각해보니 애석하게도 그 중심에는 ‘나이 듦’이 있다. 나이가 많다고 취향이 깐깐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많아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20살 때 보다 30살에 커피를 더 많이 마셔봤을 것이고, 고기도 학교 앞 저렴한 냉동 삼겹살 집에서 먹다가 이제는 자주는 아니어도 월급날이면 드라이 에이징으로 숙성을 시킨 입에서 녹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여행도 내 마음대로 할 순 없지만 알아서 계획을 다 짜주는 패키지 상품으로 가보고, 구글 지도를 보며 이리저리 발품은 많이 팔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기는 개인 여행으로도 가본다.
나이에 비해서 경험이 더 많이 쌓이는 것은 팩트이다. 20년 산 사람과 30년 산 사람의 시간은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취향의 기준이 좀 더 촘촘해질 수 있고, 반대로 어릴 땐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취향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과 나와 같은 취급을 받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몇 년 전부터는 <개취 존중> 즉,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자>는 말이 생겨났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드디어 서로의 까다로운 취향을 히스테릭하게 보지 않고 존중해 주자니!
게다가 ‘취존’이라는 단어가 신조어로 시사상식사전에 올라갔는데 뜻이 이렇다.
‘취향 존중’,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를 줄여 이르는 말이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다양성이 추구되는 현대 사회에서 상호존중을 전제로 나타난 신조어이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꺼려하는 것이더라도 그것을 좋아하는 이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취존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와 같이 쓰일 수 있으며 비슷한 의미의 신조어에는 ‘미닝 아웃(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표현하는 것)’, ‘싫존주의(싫어하는 것 마저 존중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가 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지식백과에 올라간 ‘취존’의 뜻을 보니 그동안 얼마나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았으면 저런 말까지 나왔을까 싶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의 취향이 나오는 것이 맞는 것인데 말이지.
그러니 우리 모두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