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여름방학은 생각보다 길었다. 하루만에 수1, 수2, 미분과 적분 문제집을 한 챕터씩 끝내는 것은 생각보다 집중력과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시간의 밀도가 높아서 하루하루가 내게는 이틀이나 사흘처럼 길게 느껴졌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여름방학 덕분에 나는 학원스케줄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나는 어느정도 공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수업시간을 즐기고, 과제를 즐기고, 저녁 자습시간을 즐겼다. 이제 수업 내용 중에 이해되지 않는 내용은 없었다. 학원에 입학한 지 두 달 반만에 나는 고등학생 때의 자신감을 회복했다.
남은 3개월동안 죽지는 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한다면 목표한 475점에 안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수학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어보았다. 점수는 80점이었다. 지난 7월 모의고사 점수보다 40점이나 오른 만족스러운 점수였다. 나는 내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한 달 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수학에만 전념했던 나의 공부 방법이 통한 것이다. 수학에 대한 감을 잡았기 때문에 나는 공부 전략을 다시 짰다. 수학 공부는 학원 수업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투자방식을 버리고 안전한 분산투자방식으로 갈 때였다.
점수가 안 나올까 가장 염려했던 과목은 언어영역이었다. 유독 언어영역만 점수의 기복이 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 한 권 안 읽고 오락만 했던 지난 세월이 후회되었다. 그렇다고 지금 문학책을 펼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언어 영역의 지문에 좀 더 익숙해지고, 문제 유형과는 좀 더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어 영역에 익숙해지기 위해 언어 영역 지문을 찾아가 매일 만났고, 친해지기 위해 나와 언어 영역 사이에 엉켜 있던 문제를 매일 풀었다.
외국어 영역 같은 경우는 세 가지 지문 A, B, C를 주면서 순서를 올바르게 배치하라는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 그리고 영어 듣기와 문법 문제가 가끔씩 내 발목을 잡았다. 사실 영어 듣기 공부는 학원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이 늘 제자리였다. 아침, 저녁으로 버스를 탈 때마다 영어듣기를 했지만, 피곤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문법 문제는 공부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문법 문제만큼은 운에 맡기기로 했다. 틀려도 어쩔 수 없다는 막무가내식 돌파 방법이었다.
과학탐구 영역은 학원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신 문제집에 의존했다. 예습할 때 모든 문제를 풀어가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복습시간에 오답을 정리했다. 과학은 내가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과목이었지만, 그 시절에도 만점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재수학원에서도 아무리 열심히 과학을 공부해도 모의고사를 치면 늘 새로운 내용 또는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나왔다. 과학은 내게 운이 좋아야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이었다. 그러나 물리만큼은 꼭 만점을 받고야 말겠다는 결의로 더 열심히 공부했다. 물리는 1문제만 틀려도 3등급이 나올 수 있는 치열한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8월 모의고사날이 다가왔다. 날씨는 흐리고 우중충했다. 좋았던 기분도 나빠지는 우울한 날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그런 날씨가 좋았다. 젊음의 열기, 욕망, 걱정, 불안 이 모든 것들이 바닥에 착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기분이 차분해지고, 잡생각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결전의 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특별히 크런치 초콜릿까지 준비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모의고사를 치렀다. 이제 더 이상 공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데미안을 따라 헬스장으로 갔다. 데미안은 매일 1시간씩 시내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고 했다. 공부는 체력이기 때문에 운동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 없다고 그 친구는 말했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고, 헬스장 일일권을 끊었다. 데미안은 생각보다 몸이 좋았다.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였다. 나의 몸은 정보통신대대 몸짱이란 예전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볼품 없었다. 거울을 보고 부끄러워진 나는,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아령을 들고, 턱걸이를 하였다. 공부할 때 금방 지나가는 1시간이 헬스장에서는 10시간처럼 길었다. 데미안은 운동 후 굉장히 상쾌해보였다.
그러나 나는 죽을만큼 힘들었다. 운동 후에 더 피곤해졌다. 마음 속으로 수능 전까지 다시는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공부가 최우선순위였기 때문에, 더 좋은 성적만 받을 수 있다면, 내 건강이 좀 나빠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운동을 한 기념으로 나는 데미안과 밥을 먹으며 셀카를 찍고, 싸이월드에 사진을 올렸다.
드디어 8월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총점을 확인했다. 450점이었다. 7월 모의고사보다 무려 60점이 오른 점수였다. 바로 수학점수를 확인했다. 90점이었다. 수학은 지난번보다 50점이 올랐다. 어퍼컷 세러모니를 하고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께서 바로 앞에 계셔서 꾹 참았다. 그 때 선생님께서 내게 한 마디 하셨다. "너 누구 꺼 베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