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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May 02. 2024

최악의 수학 점수에 좌절하다.

담임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나는 당당히 앞으로 나가 성적표를 받았다. 총점을 보았다. 500점 만점에 390점. 난 충격을 받았다. 6월보다 10점이 떨어졌다. 수학점수를 보았다. 100점 만점에 40점이었다. 6월보다 무려 20점이나 떨어졌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두 달간의 노력은 헛수고였단 말인가? 내 자존심은 산산조각났다. 두 달간 노력한 결과가 이것이라면, 수능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나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 성적표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쓰레기통에 성적표를 버렸다. 


  이제 전략을 바꿔야만 했다. 우선 수면 시간을 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수학을 내버려둘 수만은 없었다. 바닥까지 떨어진 나의 수함 감각을 꼭대기까지 끌어올려야만 했다. 수학 점수가 90점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475점이라는 높은 점수는 절대로 얻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수학에 올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엄마는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 보쌈을 사 주셨다. 엄마는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내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저녁시간에 딱 맞춰서 와주셨다. 그날 먹은 보쌈은 내 평생 최고로 맛있는 보쌈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학원에 있는 날 찾아와 보쌈을 사 주시니 정말 힐링이 되었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날 도와주신만큼, 나도 엄마에게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드리고 싶었다.


  대화 중에 갑자기 경북대학교 수학과 교수 이야기가 나왔다. 갑자기 왠 수학과 이야기를? 알고 보니 엄마 친척 중에 한 명이 현재 경북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 친척 교수님을 한 번 만나 뵙고, 상담을 받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곧바로 만남은 추진되었다. 나는 교수님의 점심시간에 맞춰 교수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고등학교 수학문제가 적혀 있는 칠판이 보였다.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내용이기에 나는 유심히 쳐다보았다. 교수님께서는 그 문제가 얼마 전 수시입학생을 뽑기 위해 출제했던 면접문제라고 알려주셨다.

 

  대학교수님과 겸상을 하다니! 내게는 믿기지 않을만큼 영광스런 자리였다. 나도 멋진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 하나의 꿈이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온 순간이었다. 나는 만날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시종일관 훈련병 모드로 있었다. 정좌하고 앉아서 밥을 먹었고, 질문에는 항상 "네, 알겠습니다."로 대답했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 교수님께서는 내게 무거운 선물을 하나 주셨다. 

  

  교수님께서 주신 선물은 다름 아닌 고등학교 수학문제집이었다. 그 문제집은 공통수학, 수1, 수2, 미적분까지 전 범위를 다 포함하고 있어서 생각보다 두껍고 무거웠다. 교수님께서는 이 문제집이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나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의 말씀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아, 이 문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풀어보라고 말씀하시는구나.' 

  '알겠습니다. 교수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그날부터 수업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수학문제집 풀이에 투자했다. 걷는 시간, 학원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버스 타는 시간, 저녁 공부 시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난 수학문제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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