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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May 02. 2024

서바이벌 게임 시작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실미도'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서른 한 명의 684부대다. 1968년도 4월에 창설되었기 때문에 684부대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서른 한 명은 김일성을 제거하기 위해 강제 차출된 죄수들이다. 군인들은 이 서른 한 명의 죄수들을 훈련시켜 살인무기로 만든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발생한다. 임무수행 전 남북관계가 좋아진 것이다. 이제 684부대는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되었다. 상부에서는 이들을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실미도를 보면서 단순히 영화로 즐길 수가 없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괜히 심각해졌다. 마치 내가 684부대원 같았고, 실미도는 우리집 같았다. 나는 실미도라는 희망 없는 집에서 태어났다. 이 집에 남아있는 한 나는 아버지로 인해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든 지 간에 아버지는 어김없이 그곳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실 것만 같았다. 제대가 100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아서인지 나는 감성적으로 예민해져 있었다.

    

  서울대반 교실은 마치 서바이벌 게임장 같았다. 교실 안에 학생은 60명 정도였다. 모두 서울대반에 들어올 만큼 뛰어난 성적을 내는 모범생들이었다. 그 모범생들이 모두 집중할 때 발생하는 진공상태의 고요함은 나로 하여금 소름 돋게 만들었다. 다른 학생들이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만 봐도 긴장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끔씩 증상이 심해질 때면 나는 머리가 아프고 숨이 막혀 교실에서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교실이나 학원 내 독서실을 찾아갔다.

 

 나는 매일 새벽 4:30에 일어나 운동하고, 아침밥을 먹고, 5:30에 버스를 탔다. 6:30부터 22:00까지 학원에서 공부한 후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서는 씻고, 밥솥에 밥을 안친 후 새벽 1:30까지 공부했다. 수면 시간은 단 3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뒤늦게 6월에 합류한터라 시간은 없는데 수업 내용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해야 할 내용도 많았고, 풀어가야 할 과제도 많았다. 나중에는 운동시간을 아예 없앴다. 평소에 즐겨 보던 만화책도, 매일같이 가던 동전 노래방도 완전히 끊었다. 수능을 위해 나는 내 즐거움조차도 사치라고 판단했다.

 

  시간이 지나자 언어영역 수업시간만큼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 책은 읽어본 적이 없던 내가 언어영역을 가장 좋아하게 되다니. 나 자신도 놀랐었다. 수학은 정말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수능까지 5개월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수학에 올인할 수 없었다. 수학 대신 나는 빨리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물리, 화학, 생물에 집중했다.


  드디어 6월 모의고사날이 되었다. 무려 4년 8개월만에 치는 모의고사였다. 나는 은근히 괜찮은 점수를 기대하며 모의고사 시험을 치렀다. 수학이 정말 어려웠다.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10문제도 채 되지 않았다. 80점이 아니라 100점 만점인 수학에서 내 평생 최악의 점수인 60점을 받게 되었다. 총점은 500만점에 400점. 반에서 거의 꼴찌에 가까운 점수였다. 난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머지 과목에서 나름 선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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