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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Apr 25. 2024

늘 궁금했던 엄마의 얼굴

  엄마의 얼굴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꿈을 꾸면 엄마가 한 번씩 등장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도 모르게 생모를 만나 밀회를 즐겼다. 엄마의 얼굴은 항상 까맣게 색칠되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SES와 핑클이라는 그룹이 등장했을 때, 남학생들은 열광했다. 우리 반에서는 SES파와 핑클파로 나뉘어 싸우기까지 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는 SES파였다. SES의 세 멤버 바다, 유진, 슈 중에서 나는 유진이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다. 슈는 귀여웠고, 바다는 노래를 가장 잘 불렀다. 나는 문구점에 가서 SES 멤버들의 사진을 한 장당 300원씩 주고 여러 장 구입했다.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 사진을 붙여놓았다.


  고2 여름 날 용이 집에서 꿈을 꿨는데 또 엄마가 나왔다. 이번에는 엄마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보였다. 누군가와 굉장히 닮아보였다. 자세히 보니 '유진'의 얼굴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자랑했다. 내 엄마는 분명히 유진처럼 예쁜 사람일거라고. 친구들은 아마 속으로 비웃었을 것이다. '점마 뭐라카노. 뭐 잘못 무웃나'


  경북대학교에 합격한 후 나는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우리는 휴대폰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고, 우방타워랜드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약속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다. '왜 낮에 만나서 대화를 나누지 않고, 밤에 만났을까?'라는 의문이 지금 생기지만, 자세한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 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따로 시간을 내지 않은 것 같다.


  약속날도 나는 친구들과 다 함께 용이 집에 모여 놀았다. 긴장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기하게도 엄마에 대한 그 어떤 나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왜 어렸을 때 날 버리고 떠났나요?' 같은 진부한 질문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엄마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나도 엄마가 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혹시라도 엄마가 먼저 나와 기다릴까봐 약속 장소에 30분 일찍 나가 기다렸다. 친구들도 감동적인 재회 장면을 목격하기 위해 다 같이 따라 나왔다. 엄마는 아직 안 나오셨다. 나는 입구 중앙에 서 있었고, 친구들은 멀리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차 한대가 내 앞에서 멈춰 섰다.


  글을 쓰는 지금(2024년) 현재 내 나이 또래의 한 여자가 내려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고,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얼굴이 나와 닮았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비로소 내 긴장은 눈 녹듯이 풀리고,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무얼 해야 할지 알았다.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반갑지만 어색한 시간이었다. 엄마와 나는 함께한 기쁨도 슬픔도 없었다. 물론 엄마는 기억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추억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말 태어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엄마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엄마와의 관계를 어떻게 쌓아나가야 몰라 불안했다. 어렵게 만난 엄마와 또 헤어질까봐 불안했다. 나는 어떻게든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엄마와 헤어지자, 친구들은 내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친구들에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했다. 나 말고도 부모님께서 이혼하셨거나, 부모님께서 편찮으신 친구들이 몇 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나처럼 어릴 적에 엄마와 헤어진 친구도 있었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본인도 고통스럽고 괴로웠을 텐데, 그 친구는 날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나는 이 뜻 깊은 행사를 함께 치러준 모든 친구들에게서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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