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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Apr 24. 2024

좌절된 복학,뜻밖의 기회

나는 시간을 내어 경북대 전자전기공학부 G반 과방에 갔다. 내가 모르는 후배들이 드나들었다. 심심해서 나가려고 할 때 01학번 후배가 들어왔다. 중키에 단발머리를 한 모범생 스타일의 여자 후배였다. 친하지 않은 후배였는데,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굉장히 밝은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01학번 OOO이에요."

  "어, 안녕.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전 이제 졸업반이에요."

  "아...좋겠다. 취업은?"

  "한국전력공사 합격했어요." 

  "아...축하해. 좋겠다."


  갑자기 살짝 어지러웠다. 난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00학번인데 학점, 자격증, 토익 아무것도 아직 준비하지 못했다. 저 후배는 모두가 선망하는 한국전력공사에 벌써 당당히 합격했다. '도대체 어떻게 준비한 걸까? 차이가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만 많은 내 자신이 한심해보였고, 나의 무능력함이 실망스러웠다. 먼저 복학한 과동기들을 찾아가 만났을 때 내 좌절감은 더욱더 커졌다. 그들은 너무나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학원까지 다니며 고3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한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별을 보면서 등교하고, 또 별을 보면서 하교해."


  괴물들 같았다. 나는 도저히 복학해서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제대 후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내 인생에 또 위기가 찾아왔다. 


  사실 제대 전부터 어학연수를 같이 가자고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고맙게도 어학연수 비용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 친구는 바로 용이였다. '용이의 부모님은 어떤 마음으로 그 제안에 동의하신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이의 아버지, 어머님께서 피땀흘려 일하신 그 돈을 내가 함부로 사용할 순 없었다. 이미 나는 그분들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그 집에서 얻어먹은 밥값만 해도 백만원은 넘을 것 같았다. 나는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할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북대 동기 훈이는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수능 제도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수능제도의 변화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언어영역(국어) 비중 축소 : 120점 -> 100점 

  2. 수리영역(수학) 비중 확대 :  80점 -> 100점 

  3. 외국어영역(영어) 비중 확대 : 80점 -> 100점 

  4. 과학탐구영역 비중 확대 : 네 과목 선택 시 총점 200점 

  5. 사회탐구영역은 없어짐.


  위의 수능제도 변화가 도대체 나와 어떤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의 장단점에 한 과목씩 적용시켜보면 그 효과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1. 언어영역(국어) : 자신 없는 과목인데 비중이 축소되었다. Good! 

  2. 수리영역(수학) : 가장 좋아하는 과목인데 비중이 확대되었다. Excelent!!

  3. 외국어영역(영어) : 자신 있는 과목인데 비중이 확대되었다. Good!

  4. 과학탐구영역(과학) : 좋아하는 과목인데 비중이 확대되었다. Good!

  5. 사회탐구영역(암기과목) : 가장 싫어하는 과목인데 아예 없어졌다. Perfect!!! 


  나의 약점인 암기과목이 몰려있는 사회탐구영역이 사라졌다. 이건 내게 마치 기적 같았다. 대박! 횡재한 기분이었다. 내가 못하는 과목인 언어영역은 안타깝게도 사라지진 않았지만, 비중이 축소되었다. 나에게 굉장히 다행스런 일이였다. 나머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들인 수학, 영어, 과학은 그 비중이 다 늘어났다. 브라보!  


  훈이의 제안이 가장 솔깃했다. 수능제도 변화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확신하기 시작했다. 이건 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그러나 바뀐 것은 수능 제도일 뿐 내 상황은 여전했다. 난 돈이 없었다. 나를 도와줄 어른도 한 명 없었다. 5년 동안 제대로 공부를 해 본 적도 없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시간도 부족했다. 수능까지 5개월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했다. 


  "하나님,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되죠?"

  지금까지의 나는 어른들에게 끌려 다니기만 했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인생이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그렇게 살 수 없다. 

  능동적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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