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지박약사 May 02. 2024

수학 각성

  수면 시간은 여러 실험을 통해 6시간 30분이 내게 최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난 자정부터 오전 6:30까지 자기로 결정했다. 아버지께서는 굉장히 이른 새벽에 깨실 때가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일어나자마자 활동을 시작하신다는 데 있었다. 어느 날은 새벽 5시에 벽에 못을 박으셨다. 마치 나의 잠을 일부러 방해하려고 작정한 사람 같았다. 


  어느 날은 대놓고 내 방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내 방은 너무나 좁아서 옷장에 머리를 두고 누우면 내 발가락이 방문에 닿을 정도였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두드릴 때마다 방문을 통해 내 몸으로 충격이 전달되었다. 아버지는 강제로 문을 열려고 하셨고, 나는 발바닥에 힘을 주어 방문을 밀며 버티었다. 한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실랑이를 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집 안에서 아버지의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아침에도 밤에도 아버지는 집에 안 계셨다. 할머니께 여쭤보니 할머니는 아버지께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말씀하였다. 아버지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나는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온전히 내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할머니는 예전 집에 그대로 살고 계셨고, 나는 제대 후 임대주택으로 이사해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집은 할머니 집에서 버스로 1시간은 걸리는 먼 거리에 있었다. 나는 너무 바빠서 할머니 집에 갈 시간도 없었다. 결국 나는 혼자 살기로 결정했다. 2004년 7월 나는 평생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나는 수학 문제집에 있는 모든 문제를 다 풀었다. 단 한 달만에 고교 수학의 모든 과정을 독파한 것이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원칙'을 지키면서 모든 문제를 다 풀 수 있었다는 게 난 너무 놀라웠다. 내게는 수학 문제를 풀 때 꼭 지켜야할 원칙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문제를 풀어서 답이 나오기 전에 절대로 먼저 답안지를 펼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학 문제를 잘못 풀어서 틀릴 수는 있지만, 절대 답안지를 빈칸으로 두는 일은 없다는 의미다. 나는 문제집의 설명을 읽고 예제, 유제, 연습 문제 순으로 차근차근 다 풀었다. 문제집의 수준이 평이해서 그런지 막히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8월이 되자, 학원은 일주일간의 방학을 발표했다. 처음에 나는 이 방학에 대해 굉장한 불만을 표시했다. 수능이 3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방학을 즐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일주일의 방학을 어떻게 활용할지 계획하기 시작했다. 나는 방학동안 나의 단점들을 최대한 보완하기로 결정했다. 눈에 띄는 나의 단점들은 다음과 같았다.

  

  1. 수학 : 직전 수학 모의고사 점수가 40점이다.

  2. EBS : 수능과 연계되는 EBS 문제집을 아직 한 권도 풀어보지 못했다. 

  3. 영어 : 특정 유형의 문제를 자주 틀린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동안 이렇게 공부하기로 계획했다. 


  1. 수학 : 1학기 EBS 문제집 중 수1, 수2, 미적분 문제집을 사서 다 푼다.

  2. EBS : 과학탐구와 관련된 EBS 문제집을 사서 다 푼다. 

  3. 영어 : 유형별 문제로 정리된 EBS 영어 문제집을 사서 다 푼다. 

  

  그래도 방학은 방학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할머니 집에 가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할머니는 날 반갑게 맞아주었고, 나 또한 할머니 얼굴을 보니 기운이 났다. 나는 할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아침밥을 먹고, 8시까지 독서실로 향했다. 독서실에서 4시간 가량 공부한 다음 독서실 아래 고깃집에서 갈비탕을 시켜먹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언어영역을 위해 꼭 신문 사설을 꼼꼼히 읽었다. 주로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또 공부한 후 저녁식사는 할머니 집에 가서 먹었다. 저녁 7시부터 공부할 때는 굳이 공부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내가 공부하고 싶을 때까지 마음껏 공부했다. 이것은 방학의 매력이라고 난 생각했다.  

  

  일주일의 시간은 내 모든 목표들을 완수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100% 달성한 목표는 오직 수학 뿐이었다. 나머지 과목들은 모두 50% 밖에 풀지 못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스스로 이것이 최선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도전해도 이보다 더 열심히 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정말 많이 공부한 날은 수학만 18시간동안 집중해서 공부했다. 그 날의 뿌듯함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골목을 걸어갈 때 기분이 참 상쾌했다. 그 순간 나는 고등학교 때의 그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동안 가슴에 꽉 막혀있던 스트레스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일주일간의 특훈으로 각성한 나는 이제 더 이상 수학이 두렵지 않았다. 빨리 8월 모의고사를 쳐서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전 06화 최악의 수학 점수에 좌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