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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May 06. 2024

수치를 참고

드디어 8월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총점을 확인했다. 450점이었다. 7월 모의고사보다 무려 60점이 오른 점수였다. 바로 수학점수를 확인했다. 90점이었다. 수학은 지난번보다 50점이 올랐다. 어퍼컷 세러모니를 하고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께서 바로 앞에 계셔서 꾹 참았다. 그 때 선생님께서 내게 한 마디 하셨다. "너 누구 꺼 베꼈니?"


  "네???"


  나는 황당해서 빨리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참을 수 없이 수치스럽고, 기분 나빴다. 그러나 선생님의 이런 시시한 도발 때문에 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 달 만에 수학 점수가 50점이나 올랐으니, 이건 누구라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학 점수가 50점 내려간 게 아니라, 50점 올라간 일이나 얼마나 경사스런 일인가? 이렇게 나는 선생님의 오해를 합리화하며,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포장하였다. 


  이제 남은 모의고사는 9월, 10월 단 두 번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집의 가난한 형편으로는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상황이었다. 키다리아저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우리 집에서 내게 매달 주시는 30만원, 키다리아저씨께서 내게 매달 주시는 30만원, 이 60만원의 돈이 낭비되지 않도록 나는 매일 최선을 다했다.


  추석에 친구들이 만나자고 했을 때에도 나는 수능 공부를 핑계로 일찍 일어났다. 친구들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은데, 나는 시간이 없었다. 궁리 끝에 택시를 타고 친구를 보러 갔다. 얼굴을 보고 잠시 안부를 나눈 다음, 나는 친구들에게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나는 미안함을 두 가지 방법으로 표현했다. 하나는 말, 둘째는 돈. 서둘러 계산을 한 후,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택시를 타고 독서실로 향했다.


  추석명절에 가족들이 식당에서 모두 모여 식사하는 날이 있었다. 그 때에도 나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독서실로 뛰어갔다. 가족들과 친척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른들은 내가 예의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걸음이 느린 할머니를 다른 친척들에게 부탁하고 나만 먼저 사라져버렸으니까. 누군가는 내가 제대 후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서울대에 합격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9월 모의고사를 쳤다. 각 과목별 과목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총점과 수학점수는 정확히 기억난다. 455점과 92점이었다. 이를 토대로 다른 과목의 점수를 추측해보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언어영역 85점(목표:95점) 

  수리영역 92점(목표:95점)

  외국어영역 100점(목표:95점) 

  과학탐구 178점(목표:190점)  


  언어영역 점수는 여전히 내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언어라는 친구는 성격이 까다롭고, 감정 기복이 심해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문제집을 풀 때면 90점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모의고사를 치면 도무지 90점이 나오지 않았다.


  수리영역은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에 이은 연속 90점대였다. 이번에는 선생님께서도 내 실력을 인정해주셨다. 그러나 여전히 목표점수인 95점을 뛰어넘지 못해 아쉬웠다. 이제 충분히 100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100점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풀이 방법을 동원해도 풀 수 없는 문제가 꼭 두 세 문제는 나왔다.


  외국어영역은 태어나 처음으로 100점을 받았다. 내 실력이 뛰어났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다고 분석했다. 기분이 얼떨떨했지만, 무척 행복했다. 이 점수가 수능점수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만점이라고 주위에 자랑하고 싶었지만, 모의평가 점수이기에 참았다. 나는 '영어는 이제 별 거 아니다. 나는 영어를 정복했다'라고 생각했다. 이 100점은 나로 하여금 영어에 약간 소홀하게 만들었다.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절대 방심은 금물'이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과학탐구는 여전히 어려웠다. 사실 원점수로만 보면 아주 못한 점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과학탐구는 각 과목별로 강자들이 모여있는 경우가 많아서 몇 문제만 틀려도 표준 점수가 형편없이 떨어졌다. 그래서 만점이 하나도 없고, 모든 과목마다 몇 문제씩 틀리는 나는 굉장히 불리했다.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개선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매일 저녁마다 과학이론을 공부하고, 틀린 문제를 복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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