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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May 27. 2024

드디어 짝꿍이 생기다.

9월 모의고사는 내게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 시험으로 나는 서울대반 석차 10위권에 가까이 올라왔다. 데미안이 있는 특별반에는 비록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이 모인 서울대반 10위권 안에 든다는 건 생각만 해도 행복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 목표를 생각할 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10위권이 아니라 1등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내가 예상치못한 다크호스로 밝혀지자, 내게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도 몇 명 나타났다. 나와 같은 수성구에 사는 남학생, 늦게 와서 내 옆에 몇 번 앉은 여학생, 나처럼 군대 제대 후 다시 수능에 도전하는 동갑내기 친구 이렇게 세 명이었다. 


  내 짝꿍이 될 뻔 했던 그 여학생은 항상 향수를 뿌리고 학원에 왔다. 목숨을 걸고 공부하고 있던 나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에, 향수 냄새는 나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했다. 공부에 관한 한 1%의 집중력도 방해받기 싫은 나는 그녀를 피해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나는 최상의 공부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적의 짝꿍을 찾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알게 된 친구가 동갑내기 친구였다. 나와 짝꿍이 되었는지, 앞뒤로 앉았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를 심적으로 의지했다. 나 이상으로 몰입해서 공부하는 그의 절박함, 집에 갈 때까지 흔들리지 않는 그의 꼿꼿한 자세, 약대라는 동일한 목표가 나를 자극했다. 나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라이벌인 그 친구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수성구에 사는 남학생은 뽀글뽀글 파마머리가 특징이었다. 얼굴 생김새도, 몸매도 파마와 어울리게 통통한 친구였다. 9월 모의고사를 친 후, 우리는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갑자기 그 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형 우리 집에 안 갈래요?" 나는 마침 피곤하기도 했고, 집에 가도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아 파마머리 친구의 제안을 수락했다.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셔서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친구는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등생 형이라고 날 소개했다. 파마머리 친구 어머니께서 내게 "어디 살아요?"라고 질문하셨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숨기고 싶었다. 집 주소를 말하는 순간, 내가 임대주택에서 사는 가난한 학생이라는 게 밝혀질까 두려웠다. 집은 넓지 않았다. 20평대 같았다.


  그러나 대구에서 가장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수성구라고 들었기 때문에 이 집도 매우 비싼 집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찌 되었든 날 집에 초대해준 파마머리 친구에게 고마웠다.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준 친구 어머니께도 감사했다. 바로 집으로 가기가 미안해 나는 파마머리 친구와 함께 근처 오락실에 가서 잠시 놀았다.


  시간을 금이라 여기는 내가 오락실에 갔다니, 입시 스트레스가 컸던 모양이다. 마음이 답답해 집까지 걸어갔다. 불은 꺼져있었고,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빠는 수능을 친 후에나 퇴원하실 모양이다. 이렇게 텅 빈 아파트에서 나 혼자 산지 삼 개월째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최대한 푹 자려고 노력했다. 두 달 후면 모든 게 끝나 있을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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