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달 동안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고민해보았다. 막막했다. 당장 학원에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심리상태였기 때문에 우선 학원부터 그만두기로 했다. 학원에 찾아가 학원비 환불을 요청했다. 그러나 학원은 환불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할 수 없이 나는 학원에서 사물함을 이용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사물함이 학원에 있으니 책들은 학원에 보관하고, 공부는 국채보상운동공원에 있는 중앙도서관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장소는 정해졌으니, 이제 방법을 정해야만 했다. 남은 한 달동안 어떻게 수능 준비를 할 것인가? 나는 수능 당일날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계속 생각했다. 몇 가지 후보들을 떠올려보았다.
1.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험 치기
2. 모의고사를 많이 경험하기
3. 오답 노트를 기억하기
나는 1번인 최상의 컨디션이 수능 점수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수능 당일 최상의 컨디션을 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1999년 수능을 떠올려보았다. 그날 나는 왜 실패했을까? 나는 먼저 처음 수능에 실패한 이유를 분석해보기로 했다.
1. 수능 전날 친구들과 PC방 가고, 패스트푸드를 먹고, 밤 늦게까지 돌아다녔다.
2. 수면 시간이 짧았고,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3. 수능 시험장에 일찍 도착하지 못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4. 수능 시험장이 어색하고, 불편해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5. 언어영역을 풀 때 시간조절에 실패해서 두 지문은 아예 읽지도 못했다..
6. 시험시간 내내 도망치고 싶었다.
7. 무엇보다 고3 내내 공부를 하지 않았다.
위의 이유를 토대로 수능 당일 최상의 컨디션을 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1. 수능 시험을 치는 시간에 최대한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1-1. 수능 치는 날에 입을 옷을 미리 정한 후, 그 옷을 한달 내내 입는다.
2. 수능 문제를 풀 때 최대한 익숙함을 느껴야 한다.
2-1. 수능 시험 시간표를 확인한 후, 그 시간표대로 한달 내내 공부한다.
3. 수능 치기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3-1. 한달 동안 밤 10시에 눕는다. 단, 수능 전날은 8시 30분에 눕는다.
4. 수능 시험장에 아침 일찍 도착해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4-1.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준비한 후, 택시를 타고 시험장으로 향한다.
5. 제한 시간 안에 모든 문제를 다 풀 수 있어야 한다.
5-1. 제한시간보다 10분 일찍 문제 풀이를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5-2.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시간 끌지 말고,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6. 무슨 일이 발생해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한다.
7. 쉬지 않고 매일 공부한다.
나는 시내 서점에 가서 EBS 파이널 문제집과 다양한 모의고사 문제집들을 샀다. 욕심 같아선 다 사서 풀고 싶었지만 종류가 생각보다 많아 얼른 포기했다. 문제집을 들고 중앙도서관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매일 모의고사를 푸는 공부 방법이 좋은 방법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 모의고사를 치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너무 긴장되어서 이론서를 읽거나, 새로운 내용을 공부해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한 나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 가보니 학원친구들이 이미 와 있었다. 열 명은 넘는 것 같았다. 내 옆자리에는 또 다른 동갑내기 친구가 와서 앉았다. 그 친구는 가방을 내려놓고 나가더니 세 시간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 와서 내가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몹시 감탄했다. "너 정말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럼 도서관에 공부하러 오지. 놀러 오냐?"
아침 1교시 시간에는 언어영역을 풀었다. 2교시 시간에는 수리영역을 풀었다. 3교시 시간에는 영어듣기를 한 후, 외국어영역을 풀었다. 4교시 시간에는 과학탐구영역을 차례대로 풀었다. 점심식사로는 항상 비빔밥을 먹었다. 한달 내내 나는 항상 동일한 검정 츄리닝을 입고 중앙도서관 지하식당에 가서 비빔밥을 먹었다. 물론 매일매일 다른 메뉴를 먹어볼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항상 결론은 비빔밥이었다.
왜냐하면 빨리 먹을 수 있고, 왼손으로 영어단어집을 들고 보면서, 동시에 오른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일 같은 시간에 매일 똑같은 츄리닝을 입고 매점 매표소 직원을 찾아가서, 매일 똑같은 멘트인 "비빔밥이요."를 말하려니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특히, 나는 매일 점심과 저녁 하루 두 끼를 비빔밥으로 때웠기 때문에 그 매점 직원이 날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부터 내가 지하 매점으로 내려가면, 그 직원은 이미 손에 비빔밥 식권을 들고 날 기다렸다. 그 직원은 심지어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내게 식권을 건네려고 했다. 그 직원도 심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매점 매표소 앞에서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그 직원은 비빔밥 식권을 손에 쥐고, 손이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들어가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