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지박약사 May 30. 2024

드디어 결전의 날이 오다

  매일이 수능 당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었다. 점수는 460점 전후로 왔다갔다 했다. 반복되는 모의고사에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점수는 440점까지 내려갔다. 실력은 점점 퇴보하고, 에너지는 점점 소모되고 있었다. 그래서 과학탐구 영역은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모든 과목을 시험이 아니라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접근했다. 


  점심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수험생 잡지를 읽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합격한 대구고등학교 후배가 쓴 '수능 공부법'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 후배가 한없이 대단해보였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만, 솔직히 결과는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이 꾸준함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것이라 확신했다. 내가 맺을 결실이 궁금했다. 그게 무엇이든 나는 만족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는 정말 후회가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내 체력은 바닥을 쳤다. 더 오래 끌면 번아웃될 것만 같았다. 이제는 어떻게든 빨리 승부를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힘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수능 하루 전날이 찾아왔다. 이 날은 특별히 집에 일찍 들어갔다. 처음부터 저녁 8:30에 자기로 계획했던 날이었다. 할머니께서 항상 그 시간에 주무시기 때문에 8:30이라고 취침시간을 정했을 수도 있다. 할머니와 나는 이부자리를 펴고 잘 준비를 했다. 


  그 때 막내고모가 들어오셨다. 내가 출출할까봐 떡을 가지고 오셨다. 막내고모는 내일 시험 잘 치라고 날 격려해주셨다. 나는 조금 놀랐다. 할머니를 제외하면, 가족과 친척들 중에서 나의 수능 시험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응원해준 사람은 막내고모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방안에 세 명이 모여 앉으니 방이 더 훈훈해졌다. 따스한 온기는 내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주었다. 덕분에 나는 꿀잠을 잤다.

 

  할머니께서는 새벽 5:30에 날 깨우셨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나는 씻고, 검정색 츄리닝을 입고, 준비물을 챙겼다.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불고기 덮밥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무척 감동했다. 군 입대 이후 집에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불고기였다. 한달내내 비빔밥만 먹다가 불고기를 먹으니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특별한 날에 특별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신 할머니께 감사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수능 시험장에는 매점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 별 문제가 아니다. 점심식사 한 끼 굶는다고 문제될 것도 없었고, 배고픔이 걱정되면 편의점에서 초콜렛, 커피, 빵을 사가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너무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할머니는 내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씀하시더니, 잠시 후 김밥 한 줄을 사들고 오셨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 문을 두드려서 가까스로 구한 김밥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가방에 김밥을 넣고, 택시 정류장으로 걸어가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님께 "심인고등학교로 가주세요."라고 말하니, 단번에 내가 수험생이란 걸 알아채셨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는 한산했고, 차는 하나도 막히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택시기사님은 수능 시험장으로 가는 20분동안 백미러를 통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셨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눈치였다. 도착하기 5분 전에 결국 기사님은 참지 못하시고 내게 질문하셨다.


  "집에 차 태워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네. 전 괜찮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능시험인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니."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괜찮다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기사님께 우리집을 설명드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무엇보다 오늘은 수능 시험 하나만 생각해야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택시기사님의 얼굴표정에서 날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나는 택시기사님의 말을 듣고, 기분이 전혀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시험장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아직 6:30도 되지 않았다. 당연히 1등으로 등교한 줄 알았는데, 나보다 먼저 온 학생이 한 명 있어서 놀랐다. 역시 뭐든지 1등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 자리는 창가의 중간 자리였다. 내가 생각할 때 최고의 자리인 것 같다. 창가라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고, 창문도 살짝 열 수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집중력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맨 앞이나 맨 뒤에 앉으면 시험지를 가장 빨리 걷어갈 수 있다. 중간자리는 시험지를 걷는 몇 초의 추가시간을 더 가질 수 있어 딱 좋은 자리인 것 같았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왠지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이전 12화 마지막 한 달, 새로운 공부 방식 그리고 비빔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