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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Jun 25. 2024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대학시절

 2학년이 되자 나와 동기생들은 약대 건물을 떠날 수가 없었다.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꽉 들어차있었다. 우리는 다시 고등학생이 되었다. 과학고 출신 학생들은 본인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좋은 성적을 누렸다. 나 또한 그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마음씨 착한 동기들은 항상 불안해보이고 성격이 까칠한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주었다. 그 동기들 덕분에 나는 무사히 모든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리포트 준비도 할 수 있었고, 시험도 잘 칠 수 있었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자료가 없이 나 혼자 공부했다면 지금의 내 성적은 불가능했으리라.


  2학년 여름방학 독서실에서 유기화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 약품분석학 교수님께 전화가 왔다. <약원>이라는 서울대 약대 학보가 있는데 한동안 출간되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교수님께서는 내게 약원 편집장이 되어 약원 43호를 발간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처음에는 "제가 아직 2학년이기 때문에 편집장은 맡을 수 없습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거듭해서 부탁하셨고, 결국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수락했다. 교무실에 가니 교무 실장님은 내가 근로장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6개월동안 월 30만원씩 내 계좌로 지급할 것이라고 설명해주셨다.


  평생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는 내가 편집장이 되었으니 학보 기획 및 제작이 잘 흘러갈 리 없었다. 게다가 편집위원들은 다 선배들이어서 일을 하기가 서로 불편했다. 약원은 그 존재 자체로 내게 2학기 내내 스트레스를 주었다. 나는 서울대 약대를 소개하기 위해 교수님들께 실험실 소개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든 편집위원들은 각자 맡은 기사와 에세이를 마감기한까지 작성하기로 했다. 모든 자료가 다 준비되고 편집만 하면 끝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편집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했다. 유학을 가기 위한 동기 부여를 위해 미국 여행 예약을 사전에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책임감 없는 행동이었다. 끝까지 남아 약원 43호를 완성시켜 주신 편집위원들과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리고 싶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2학년 2학기는 참 힘든 일이 많았다. 동기들은 수학여행이 계획되어 있는 그 학기에 날 과대로 뽑았다. 나는 교수님을 포함한 60명의 인원을 모시고 제주도로 3박 4일 다녀와야만 했다. 나 혼자 모든 일을 준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공권, 숙박, 여행 일정을 피앤피제주라는 여행사에 위임했다. 나는 동기들에게 회사에서 정해준 일정을 설명하고, 한사람당 187,500원씩 걷어 여행사에 납부했다.


  아직도 입금할 때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 평생 처음으로 통장에 천만원이 넘는 금액이 찍혔다. 나는 몇번이나 혹시 피앤피제주라는 회사가 사기꾼은 아닐까 의심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회사에 전화를 걸어 진위여부를 확인하려 애썼다. 마침내 손을 떨며 입금했고, 나는 하나님께 제발 사기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다행히 사기는 아니었고, 05학번 동기는 제주도에서 신나게 놀았다.


 나는 과대의 권한으로 여학생들은 친한 친구들끼리 한 방을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미안했지만 남학생들은 넓은 방에 다 때려넣었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절친 2-4명이 한 방에서 지내며 편히 쉴 수 있었지만, 남학생들은 솔직히 좀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 불평없이 따라준 남학생 동기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기회에 여학생들에게 한 마디하고 싶다.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 문 두드리며 너희들 깨우느라 힘들었어." 


  학번만 알면 성적을 알 수 있는 과목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런 과목마다 나는 A+를 받았다. 동기들은 내 성적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줄수록 나는 점점 더 교만해졌다. 열등감 컴플렉스는 우월감 컴플렉스로 바뀌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나는 동기들보다 더 잘 하고 싶었다. 나의 우수함을 그들에게 뽐내고 싶었다.


  어떤 학생은 내 학점이 좋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친구들은 그 학생을 설득하다가 과대의 업무로 칠판 앞에 서 있던 내게 이렇게 질문했다.


  "형, A0 나오면 평점 떨어지죠?"


  교실은 순간 조용해졌고 모두가 나를 주목했다. 진퇴양난인 상황이었다. 맞다고 대답하면 날 재수 없게 여길 것이고, 아니라고 대답하면 날 거짓말쟁이로 여길 것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답변하기로 결심했다.


  "응. 떨어져."


  교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나의 유행어였던 "위기다! 공부 하나도 못했다!"는 씨알도 안 먹혔다. 나와 친하게 지냈던 몇몇 지방 친구들은 갑자기 나와 시험 자료를 공유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배려를 받아왔었던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탓할 수 없었다.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물리약학 수업은 다음날 오후 4시였다. 시험을 마치고 온 나는 오후 6시에야 도서관에 앉을 수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2시간 밖에 없었다. 나는 생리현상과 배고픔을 해결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20시간 정도 집중해서 공부했다. 이상하게도 그 날은 굉장히 집중이 잘 되었다. 결과는 A+이었다. 그러나 모든 공부에 다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06년도 2학기는 가장 바쁘고 힘들고 아픈 학기였기 때문에, 최악의 평균평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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