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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Jun 14. 2024

열등감 콤플렉스

  먼 강의실로 이동할 때 혹은 쉬는 시간에 동기생들은 옹기종기 모여 대화의 꽃을 피웠다. 본격적인 대학 생활이 시작되자 이제 그 누구도 고등학교 성적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돈, 외모, 연애 쪽으로 흘러갔다.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서로 부모님의 직업을 물어보고, 주소를 물어보았다. 부모님의 직업은 의사, 외교관, 사업가, 일반공무원, 회사원, 택시기사 등 다양했지만, 교수 또는 교사가 가장 많았다. 


  내가 알게 된 동기들의 주소를 분석해보면 대략적으로 서울출신이 절반, 지방출신이 절반인 것 같았다. 서울출신 중에서 절반은 강남출신인 것 같았다. 우리는 끼리끼리 어울렸다. 강남출신은 강남출신끼리, 지방출신은 지방출신끼리 뭉쳐다녔다. 강남출신 동기들은 모여서 그 당시 몇 억씩 떨어진 집값을 걱정했고, 지방출신 동기들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표준어를 연습했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있는걸까?'


  서울에 올라와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나는 한 학기동안 동기생들을 관찰하면서 자격지심이 들었다. 동기생들은 내가 갖지 못한 많은 장점들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활용하고 누리고 있었다. 나는 좋은 풀옵션이 장착된 그들의 캐릭터가 부러웠다. 행여라 그들에게 내 약점이 들킬까 나는 노심초사했다. 내 캐릭터는 그들과 비교할 때 초라해보였다. 현질해서 업그레이드하고 싶었지만 과외해서 번 돈은 모두 생활비로 지출되었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불가능했다.


  1학년 내내 열등감 컴플렉스가 날 지배했다. 나이, 외모, 돈, 명예, 권력, 운동, 꿈 이 모든 면에서 내가 그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오기가 생겼다. 적어도 한 분야에서만큼은 나도 그들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다. 대학 신입생에게 가정환경, 외모, 돈 같은 영역은 거의 운의 영역이다. 나는 타고난 운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분야를 찾아야만 했다. 운이 아니라 오로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성취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나는 고민했다. 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내가 가장 자신있는 것, 바로 공부였다. 2학기부터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A+ 받는 것을 대학생활의 목적으로 삼았다.


  남들이 1시간 공부하면 나는 2시간 공부해야 했다. 여기서 아무리 공부를 못하는 꼴찌도 서울대생이라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았다. 그 누구도 쉬운 상대라 여기며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 한과목 한과목 한명 한명을 상대할 때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매일 새벽 같이 중앙도서관에 가서 오전수업을 예습하고, 수업이 끝나면 리포트 작성을 위한 참고문헌을 검색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실력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늘 부족했다. 특히 영어로만 진행되는 대학영어 수업은 나의 듣기와 말하기가 약해서 수업 시간마다 진땀을 뺐다.  


  나는 공부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1학년 2학기부터 고시원에서 살기로 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학교 쪽으로 1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다보면 우편에 있는 작은 고시원이었다. 고시원은 너무 좁고 답답했다. 저녁에 고시원에 들어가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조건 씻고 잤다. 그리고 눈을 뜨면 나는 무조건 중앙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일어났다. 일찍 잠드는 날은 새벽 2시나 3시에 일어났는데, 그 시간대에는 버스가 없어서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중앙도서관 3층 열람실은 24시간 운영이었기 때문에 언제든 가서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점심시간에도 더 오래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오후에 시작되는 영어수업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줄 서지 않고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는 1800원짜리 식권을 수십개씩 사서 가방에 보관해두었다. 덕분에 나는 점심시간에 식권을 살 필요도 없었고,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1800원짜리 식단은 맛이 없고 영양이 부실했지만, 나는 그 단점보다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장점을 더 크게 여겼다.


  나는 교수님께서 가산점을 준다고 하면 그게 발표든, 심부름이든, 견학이든 뭐든지 다 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연습장에 무엇이든지 다 적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필기속도는 올라갔고 곧 교수님의 모든 말씀을 놓치지 않고 다 적을 수 있는 속기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녹음해서 다시 필기해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2배로 낭비되어 그 방법은 도저히 쓸 수 없었다.


  시험기간에는 교과서의 모든 문단을 다 외우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시험문제가 요구하는 문단만 적었어야 했는데, 제대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나는 그 다음 문단까지 다 복사해 적어버렸다. 채점 조교님은 처음에 그 문제를 틀렸다고 판단하셨지만, 내가 찾아가 무섭게 정정을 요구하자 마지못해 받아들여주셨다. 나는 A+을 받지 못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나중에 성적을 확인할 때 내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성적은 100명 중 1등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나는 좀 미쳐있었던 것 같다. 그 조교님께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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