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과 무기력증 사이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by 의지박약사

나는 어제 세바시45에 나온 지나영교수(정신과전문의)의 강의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다. 내가 늘 활기차고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런 영상따위 눈여겨보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감정기복의 폭이 큰 편이다. 특히 일이 없어 한가한 시간을 보낼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큰 일이 생길 때 그리고 과도한 규제에 얽혀 답답할 때 무기력증에 빠진다. 내 능력으로는 해낼 수 없을 것 같고, 그런 이유로 하기 싫어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은 아니다. 내가 까다롭다고 여기는 그 업무나 행사를 하기 싫은 것이지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 달리기는 늘 하고 싶다. 나는 이 점이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에게 무기력증이 찾아온 것 같은데, 만약 친구가 나의 모습을 본다면 게으르다고 욕할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부지런히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나영교수는 그 궁금증을 무기력증과 번아웃의 차이로 설명했다.


번아웃은 어떤 업무 뒤에 심신이 지친 상태를 의미한다. 번아웃이 오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하는 회의감이 들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짜증이 난다. 반면에 무기력증은 하고 싶은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무기력증에 빠지면 내면에서 그 어떤 의욕도 동기유발도 생기지 않아 ‘나는 이 세상에 필요없는 사람이야’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침잠하게 된다.


이 설명을 듣고 나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무기력증에 빠진 게 아니라 번아웃이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번아웃이 왔을까 고민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2004년 전역 후 수능공부할 때부터 2025년 지금까지 단 한 달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직장을 옮길 때나 여름 휴가철에 일주일 정도 쉰 적이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 ‘힐링’ 또는 ‘휴식’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늘 내 마음 위에 무거운 짐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번아웃이란 신호를 무시하고 방치한다면 언제 무기력증으로 악화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지나영교수는 무기력증으로 가지 않는 세 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자율성을 높이는 비결은 어떤 선택을 내리기 전 항상 ‘You have a choice'라고 스스로에게 먼저 말해주는 것이다. 사회 또는 타인이 주입하는 외적동기를 이루기 위해 내 삶을 몰아가지 말라는 뜻이다. 세상은 어릴 때부터 의사 같은 좋은 직업, SKY 같은 좋은 대학, 강남의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돈을 가져야 행복한 인생이라고 가스라이팅한다. 이런 외적동기에 매몰되면 안 된다. 스스로 하기 싫은 이유와 하고 싶은 이유를 명확히 하고, 그 무엇보다 내가 존중하고 또 존중받을 수 있는 자리로 가는 게 중요하다.


둘째, 유능감을 높여야 한다. 유능감을 높이는 비결은 ‘김밥 요법’이다. 배고플 때 길고 굵은 김밥을 보면 한입에 다 먹고 싶어진다. 쇼츠에서 먹방유튜버가 그 큰 김밥을 쉬지 않고 한번에 다 먹는 영상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없다. 패배감을 느낀다. 여기서 내가 유능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김밥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먹다보면 어느새 김밥 한 줄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유능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달성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세우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관계성을 높여야 한다. 관계성을 높이는 비결은 ‘Comfort Zone'에 소속되는 것이다. Comfort Zone이란 넘어지고 실패해도 괜찮은 곳을 의미한다. 사람은 스스로 못나다고 느낄 때, 힘들 때 누군가 옆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주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성장한다. 바로 그 때 Comfort Zone은 Growth Zone으로 변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기에 성장하는 것이다.


이 강의를 듣고 성격상 내가 대책 없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은 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무기력증에는 빠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는,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나씩 도전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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