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실에 앉았다. 막 가동된 듯한 에어컨에서 부는 바람이 이따금 더위를 식혀주었다. 교육실의 맨 끝자리에 앉아 오늘 있을 강의안 자료를 펼쳤다. 중년의 강연자가 들어와 자기소개를 했다. 흰 벽에 걸쳐 펼쳐진 스크린에는 빔프로젝트로 쏘아 올린 강의 제목이 선명하게 비쳤다. '청년 세대를 위한 지자체 영상 미디어 정책 교육'이라는 문구가 고딕체로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지역 조례상으로는 청년 나이가 만으로 49세까지 이니, 청년이 아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청년이라 말하기에는 쑥스러웠다. 인구소멸 대응기금으로 조성되는 '청년 캠퍼스'와 관련하여 그 내부에 자리한 영상 미디어 관련 정책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전국 지자체에서 행하는 여러 미디어 정책 사례를 비교하며 내가 사는 지역에 적용할 방안이 무엇인지를 검토하고자 했다.
강연자의 중저음의 목소리 톤이 오후 두 시의 나른함에 더해져, 졸도 직전까지 갈 뻔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단호한 만큼 강의실에서 함께 강의를 수강하는 교육생들의 집중도는 나를 다그쳐 안드로메다로 갈뻔한 정신을 붙잡는데 도움을 주었다. 펜이 종이에 스삭거리는 소리, 볼펜 까닥이는 소리, 바퀴 달린 의자가 슬쩍 미끌리는 소리는 부산했던 정신을 다잡는데 협력자가 되었다.
무엇을 고민할 것인가. 어떤 아이디어를 낼 것인가. 왜 나는 교육을 받으며, 어떤 지점에서 지역에 사는 청년이 이러한 하드웨어 사업에 접점을 찾고, 실행주체가 되어 움직일 수 있을까. 에어컨만으로는 미지근한 교육실의 온도를 낮출 수 없어, 대형 선풍기가 교육실 뒤편에서 웅웅 거리며 돌고 있었다. 땀 속에 잉크가 번지듯, 물음이 커져만 가는 교육실에서, 잠잠히 지역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만족'이라는 단어에 비어 있는 여백을 살폈다.
10년 전에도, 창업! 지금도 창업! 아이디어와 의제 도출, 지역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음이 끝없다. 왜 묻지 않았을까. 왜 지역은 청년들에게 묻지 않은 것일까! 공청회를 통한 거수기 역할이 아닌, 일상의 자리에서 덤덤히 물어보는 것. 공론장을 형성하는 그 과정을 통해 문제의 지위를 대등하게 놓고, 대화 당사자가 된다는 것을 요원하게 느끼는 것은 나만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