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유산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 와중에 내게 마을 교사 역할이 주어져 강단에 선 적이 있었다. 해남군 북평초등학교 강당에 서서 아이들과 함께 우리의 전통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내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넓은 강당에 울려 퍼졌다.
해남군 북평면의 전통 용줄다리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큰 행사이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의 손길이 모여 거대한 줄이 만들어진다. 교육은 마을의 축제 전, 아이들에게 북평용줄다리기의 내력과 더불어 이것이 갖는 의미를 찾아보자는 뜻에서, 마을 학교 질갱이가 학교 측과 협의하여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강당 앞에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비췄다. 해남군의 지도와 '1읍 13면 515 마을'이라는 글자가 빔에 투사되어 선명하게 비췄다. 나는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북평용줄다리기의 역사를 배워볼 겁니다. 이 전통 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에요. 이곳 해남군의 남자들과 여자는 각각 '우드럼'과 '아드럼'으로 나뉘어 풍년을 기원하며 줄을 당겼습니다."
아이들의 눈망울이 반짝였다. 그들의 눈빛을 보며, 우리가 이어가야 할 전통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다. 강당의 앞줄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 까닥이는 발 춤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줄다리기의 클라이맥스는 마을의 주민들이 서로의 힘을 겨루며 줄을 당기는 것입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땀이 맺혔고, 그 순간 마을의 모든 소리와 냄새가 하나로 어우러졌답니다. 풍물패의 흥겨운 장단과 함께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전통의 힘을 몸으로 느꼈죠."
강당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아이들의 얼굴을 밝게 비쳤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설명을 이었다.
"줄다리기가 끝난 후에는 줄을 감고 논밭에 뿌리는 의식을 치렀어요. 줄을 감는 손길은 정성스럽고, 그 줄은 마치 용신의 혼이 담긴 듯 신성하게 여겨졌죠... 이 의식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공동체의 삶과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잠시 쉬며, 나는 아이들에게 어린 왕자의 여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중요한 삶의 교훈을 전해준다. "길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어린왕자에게 여우는 대답한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야. 네가 날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거지. 내 머리칼이 금빛이니까 너에게 밀밭의 금빛이 특별하게 다가올 거야. 우리가 맺은 관계가 세상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거지."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우리의 전통과 마을 사람들 간의 관계를 강조했다.
"우리도 용줄다리기를 통해 서로를 길들여가는 겁니다.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후에 이곳에 살든, 그렇지 않든, 비슷한 무언가를 보았을 때, 고향의 옛 민속을 떠올리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들이 특별한 기억이 되고, 우리의 유산이 되는 거죠."
이 문장은 단순히 우리가 줄다리기를 함께함으로써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의 유산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유산은, 땅의 기억을 동반하는 것이다. 벼농사 공동체에서 '용'이라는 신화적 동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을 '줄'이라는 형태를 빚어 마을의 당산나무에 옷을 입히고, 새끼를 꼬아 줄을 만드는 이 지난한 과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등의 질문도 그러하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각각의 한 사람이 만든 것, 아스러져 간 것을 통해, 유한한 인간의 삶을 수용하는 겸손을 배우는 것임을 뜻하기도 한다. 전통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을 배우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기를 바랐다.
이제, 500년 전통을 이어가는 북평용줄다리기 축제의 의의를 설명할 차례였다. 이번 마을의 축제는 단순히 전통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지역 사회의 결속과 자긍심을 높이는 중요한 행사였다. 축제는 과거와 현재를 날줄과 씨줄로 연결하며,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고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교류의 장이었다. 이를 통해 다음 세대에 전수하며, 용줄이 갖는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기억하자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나는 강의에서,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를 인용했다. "우리의 문명은 놀이 속에서 그리고 놀이로서 일어나고 전개됩니다. 놀이에는 생활의 즉각적인 필요를 초월하는 의미가 있어요. 그것이 우리의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죠."
덧붙여, 놀이의 중요성을 잃었을 때, 엄숙함만을 강조했던 그 시기 이후, 인류가 인문학에서 살생한 생명의 가치, 곧 전쟁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사실 요한 하위징하가 "호모 루덴스"를 집필하게 된 궁극적인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놀이하는 인간에 관한 필요성,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가에 관해 그는 물음을 남겼고, 우리는 그 답을 찾아가는 중에 삶을 설계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북평용줄다리기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다 한국전쟁 이후 명맥이 끊겼다. 2009년 해남 민예총의 노력으로, '포구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었다. 매년 10월 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행사의 주체도 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이 되었다가 이제는 주민들이 주도하여 북평면줄다리기보존회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2016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주관 최우수 농촌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북평용줄다리기 복원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때 복원의 결과로 지금의 지역에는 우수영 들소리와 함께 북평용줄다리기가 지역 주민들의 열정과 협력 속에 살아남아 있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복원, 재현이 단순한 축제 차원을 뛰어넘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근의 언론 기사에서는 이 축제가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성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덧붙여, 해남군은 이 행사를 통해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도 있었다.
'포구'라는 함의성, 그것은 해양문화가 갖는 저력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자면 포구를 끼고 성장한 해남 반도의 문화이기도 했다. 해남은 과거부터 해양 교류의 중심지로, 한·중·일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던 요충지였다. 또한 최근에는 마한 시대의 '소도'가 비교적 온전한 모양으로 그 터가 발굴됨으로써 이러한 맥락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포구를 중심으로 한 해양 문화는 개방성과 진취성, 다양성을 상징한다. 해남의 정체성과 미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것에 대한 연구 및 가치사슬을 연계한 지역 문화콘텐츠 발굴은 현시점의 과제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북평용줄다리기는 단순한 민속놀이를 넘고 있다. 지역 사회의 화합과 연대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이 축제는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전통을 기린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더할 수 없는 해남의 문화자원이다. 자원은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행사가 끝난 후, 강단을 나서며 바람을 맞는 순간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강단 밖의 신선한 공기 덕분에 머리가 더욱 맑아졌다. 문화유산 연구자로서 북평용줄다리기를 학술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이 전통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연구하여 후세에 정확히 전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고민이 앞으로의 지역 문화유산을 연구하는데 그 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확신했다. 기지시줄다리기와 비견하여 북평용줄다리기가 격이 결코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역에서 향토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이를 통해 주민들의 경제적 가치까지 창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또한 이후 지속적인 관리와 주민 주도형 축제 방향의 존속 등의 가치를 연구하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등과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조금씩 지역에서 내 역할을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