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지역의 도서관 교육 프로그램 일환으로 '말깨비 여행'이라는 마을 교육을 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글을 작성했다.
아침의 공기는 해남의 들판을 감싸며 나를 감각의 세계로 이끌었다. 첫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바다 향기가 내 코에 닿자마자 마치 바다 속으로 잠겨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개나리꽃의 밝은 노란빛이 눈부셨고,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어란진초등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의 밝은 얼굴과 호기심 어린 눈빛이 나를 반겼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 작은 손들 속에 움켜쥔 설화의 단어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역동적이었다. 첫 수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설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말씀 설(說)자와 말할 화(話)자의 합성어라는 설명을 마치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의 호기심이 내 목소리에 스며들어 손끝으로 전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손인형을 이용한 역할극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손끝에서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 아이가 룰렛을 돌리며 할아버지 손인형을 집어들고, 마치 실제로 할아버지가 된 것처럼 목소리를 흉내냈다. "애비야, 용돈 줄게, 만원이다. 옛다, 옛다." 그 순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그 웃음소리는 마치 훈풍처럼 내 귀에 닿았다.
삼산초등학교에서의 수업은 더욱 특별했다. 아이들이 손인형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창의력이 꽃피는 것을 보았다. 손인형을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는 마치 손끝에서 펼쳐지는 작은 마을의 축제 같았다. 아이들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인형의 촉감은 그들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만났을 때 인사했던 것처럼 헤어질 때도 바르게 인사합시다." 그 순간, 아이들의 눈빛에서 따뜻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이 내 마음에 울려 포갰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수업을 넘어,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말깨비 여행을 통해 아이들은 지역의 이야기를 배우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 모든 순간들이 모여, 우리는 서로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갔다.
첫날, 우리는 아이들이 정한 규칙과 선생님이 정한 규칙 한 가지를 정했다. 이를테면 선생님인 필자가 정한 규칙은 모든 활동 종료시마다 정리하기,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 잘 듣기, 친구들과 싸우지 않기 등이 있었다. 또한 규칙을 어길 때 치러야 하는 벌칙 역시 아이들 입으로 정했다. 가령 엉덩이로 이름쓰기, 빈 공간에서 1분간 서서 생각하기 등이 그러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서, 우리가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의견을 표명하고, 그것을 지키는 민주주의 수업은 별도의 이론 없이 스스로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정하고, 공동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데 회차당 주어진 시간이 두 시간이었는데, 우리는 한 시간 가까이 토론하고 의견을 모았다. 필요하다면 그 이상도 이 시간을 내어줄 계획이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오랜 시간 숙의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 아닌 보여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날, 우리는 북평면 오산 마을에 전해오는 도깨비 이야기를 접했다. 동화구연을 하듯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깨비의 이미지와 실제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도깨비 이미지를 반추하는 시간도 가졌다. 뿔이 가진 도깨비가 왜 우리 머릿속에 굳어졌는지, 그 도깨비의 원조가 일본의 오니와 흡사하다는 것부터, 우리 지역 도깨비 이야기까지 아이들은 접했다. 하지만 이런 이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작은 체구에 뛰는 심장은 그 누구보다 빠르므로, 아이들은 서둘러 도깨비 가면 및 방망이를 만들며, 이야기 속 도깨비를 상상했다. 만들고 춤추고, 놀고, 웃는 시간의 결 동안, 우리는 관계라는 단어를 체득했다.
셋째 날, 도깨비 마을을 스크레치판에 그리고, 우리는 20년 후 성공한 사람의 모습으로, 큐레이팅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래 큐레이터는 우리 말로 학예사를 일컫는 것인데,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기획 전시하는 일을 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는 작품보다 꿈의 질서를 재배열하고, 정상의 순간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미리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나이는 순식간에 70세가 되기도 했고, 이제 막 장가든 새신랑이 되기도 했다. 뉴욕 타임즈에 얼굴이 알려지기도 하고, 방금 중국에서 강의를 마치고 귀국한 사람도 있었다. 본인의 도깨비 마을 작품을 어느 곳에 전시할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야말로 아무말 대잔치처럼 웃고 떠들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다다라야 할 것, 아직 정하지 못한 그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가졌다. 왜?
이러한 순간들의 결이 모여, 아이들과 나는 서로의 삶에 깊이 스며들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간 이 이야기들은 단순한 수업의 기록을 넘어,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남을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아이들이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배우고, 그 속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마을 교사의 소명을 느꼈다.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며, 나는 그날의 여행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