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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Feb 13. 2022

그래서 나는 계속 말하기로 했다

서평 :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난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아.”


첫 번째 독서모임에 이렇게 무거운 책을 들고 가면 안 되었던 걸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나에게 의미 있는 독서였던 것을.


나는 이미 애도를 표했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슬픔을 매듭짓지 못했다는 사실이 버거웠다. 계속되는 비명, 계속되는 눈물, 계속되는 저항, 그만 슬퍼하라고 말할 수 없지만 계속 슬퍼함이 부대끼는 사람들. 그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두어  어린 친구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고, 나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였고, 이불속에 빠져 죽지 않길 바라며 순간순간 버티고 있었다. 억지로든 진심으로든 웃음으로 하루를 마감할  있게 되었을 때도 남의 슬픔이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 그의 에는 고름이 가득하고 어쩌면 벌레가 기어 다닐지도 모른다는 ,  방치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회복이 더딘 사람들을 보며 공감을  하는 나는 의문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애도는 슬픔의 감정을 언어로 사로잡고 상징화하며 그것이 가진 병리적 긴장을 해소하려 한다.(p.25)


슬퍼하고 또 슬퍼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슬픔을 관념화할 언어가 없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서는 슬픔의 모호한 정동을 분절하고 포획할 고정관념의 언어가 필요한데, (p.26) 나에겐 그럴만한 언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소멸하려 하지 않는 슬픔은(p.45) 멸균된 슬픔과 대조된다. 유튜브 너머의 감동적인 장면들. 휴대전화를 덮고 나면 더는 내 일이 아닌 비극. 그저 웃어넘기고 울어 넘기면 편안하고 안온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해주는 실체 없는 감정. 그에 비하여 우리를 진실로 고장 낸 슬픔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것들을 고치는 기능을 수행해낸다.


세월호 주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친구에게 나도 그래,라고 답했다. 나는 내 삶을 뒤흔들어놓는 슬픔이 나도 싫어. 이 세상을 제대로 직면하게 되면 나는 감당할 수 없게 휘청거려. 그러나 그것이 없다면, 진짜가 없다면, 술에서 깨는 순간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울고 웃으며 검은 거울(netflix의 black mirror, 스마트 기기의 꺼진 화면을 말한다.) 속 우리의 진심을 고치지 못한 채로 곪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서 둥둥 떠다니지만, 모두가 그것을 의식할 수 있지만, 그것을 표현할 말은 찾지 못한 채 의문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상처를 찢읍시다, 도끼로 세상을 찍읍시다, 그렇게 우리를 고칩시다, 맑은 영상으로 다시 만납시다. 그렇게 슬픔을 포획하여 어느 날에는 이 애도를 끝내자고, 서로에게 웃거나 울 필요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한 하루를 살 수 있도록 조금씩 꾸물거려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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