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화 Jan 22. 2022

그해의 여름에는

2014

다른 20살의 여름은 어땠을까, 그해의 여름은 물을 뚝뚝 흘리는 젖은 수건처럼 무거웠다. 나야 뭐 파도가 치듯 우울이 몰려왔다 기쁨이 몰려왔다 하는 사람이지만, 바다에 아이들이 빠져 죽은 뒤에는 도시 전체가 쉽게 울었다. 나는 생동감 넘치게 중계되는 죽음이 무서워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고, 학교들은 축제를 줄줄이 취소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사람 사는 얘기, 그러니까 섹스와 상처에 대한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문제가 있거나 아픈, 찌질이들과 환자들의 세상. 못난 자식들끼리 또 뭐 때문인지 서로 좋아는 하고, 같이 죽고 못 살지만 같이 있으면 또 서로 죽일 듯이 싸워대는... 그런 이상하고 일반적인 이야기. 크나큰 트라우마를 ‘그냥’ 넘어가는 드라마의 인물들을 보면서 OST를 참 사랑하게 됬더랜다. 토요일마다 버스 안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똑같은 트랙을 듣고 또 들었다.


주말과 방학을 통째로 갈아 넣어 교육 봉사를 했다. 위대한 교육인이 될 줄 알았고 위대한 사랑을 할 줄 알았지만 글쎄, 기억에 남는 건 지나치게 똑똑한 교수님들의 애정 어린 한숨과 멍청이들을 이해해보려는 멋쩍은 시도들 정도. 한때 우상이었던 교육인의 미성년자 성폭행, 횡령, 소송과 피해자를 대하는 가해적인 태도…. 교육의 꿈으로부터 최대한 멀리멀리 도망쳐야겠다는 생존 의식 따위가 나를 자꾸만 쫓아왔다.


학원, 대안학교, 멘토링, 무료 공부방 등 많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도 못 벌기도 했지만, 근로계약서는 단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 대신 존중의 자리는 청년 팔이의 가스라이팅이 넘치도록 채웠고, 우울한 기질은 극복의 대상, 일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무언가라고 내재화했다. 나는 마음이 아픈 이들과 나 자신에게 불친절한 사람이 되었다.


새벽기도를 올출하는 인간으로서 매일 아침 학교 갈 짐을 다 챙겨서 집을 나왔다. 기도가 끝나면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집으로 돌아와 이불 속으로 숨는 날도 많았지만. 때때로 버스라도 타보자, 하고 종점까지 가거나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세상이 두려워져 화장실에 숨어있기도 했다. 너에게 투자했던 영어 학원비는 다 어디 갔니? 왜 이렇게 아빠를 실망하게 하니? 공부도 잘하던 애가 왜 여기에 왔니? ... 나는 그러게, 하는 답 외에는, 그래도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태도 외에는 응수할 것이 없었다. 교수님은 1학년 한 학기 동안 잘한 일을 적어보라고 했다. 나는 태블릿에 ‘죽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적었다.


좆같았던 세상과 시간을 ‘힘들었기에 행복했던 젊은 날’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 새벽부터 준비하고 나서도 죽음의 충동이 들어 최대한 신나는 CCM을 귀에 쑤셔 넣듯 들으며 살아남았던 하루하루를 아름다웠다고 규정짓는 건 아직 난감한 일이다.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해낼 수 없는 과제들을 해냈으니까, 온갖 가스라이팅에 속아가면서 꿈을 잃지 않았으니까, 슬퍼하는 사람들과 공황 속에서 살아남았으니까, 대단하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 좆같은 때에 좆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잘 살아남았다고, 네가 가진 우울과 불안은 그들이 평가절하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조금씩 멀어져가는 20살의 나를 조금씩 더 고마워하고 존경하며 불쌍히 여기고 있다.

이전 02화 어쩌지 마음에서 자꾸 슬픈 것만 나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