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화 Jan 10. 2022

나의 사랑하는 생활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라, 일단 나는 생활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생활 속에서 자신을 느끼는 과정이래, 유명한 박사님의 유의미한 위로를 들은 적이 있다.​


 비슷한 예로 하루 끝에서 감사노트를 쓰며 권태와 좌절을 깨는 행위를 사랑한다. 아주 작은 성공의 경험을 스스로에게 깨우치고 오늘 나는 이만큼 자랐어, 아주아주 수고했어, 나는 이런 축복과 사랑을 받았어, 나는 아주아주 행운아야, 하고 되뇌이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아이들의 작은 손목을 사랑한다. 뒤에서 걸으면 속절없이 드러나는 그들의 정수리나 속내도 사랑한다. 작지만 사람이고, 사람이지만 사랑스러운 그들을 보며 귀엽다는 말로는, 두렵다는 말로는 부족한 감정을 느낀다. 아무렇지 않아야 할 것 같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닌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그 아무렇지 않음에 감사하다.

 카페 곳곳에 들여진 정성을 사랑한다. 다시 말해 대기업 프랜차이즈 명찰 아래에 다 까져버린 페인트 자국 같은 것들을 싫어한다. 눈길과 손길을 대지 않은 게으름과 무심함에 진저리를 친다. 또 다시 말해 고심해서 고른 플레이리스트와 커피를 대하는 과하게 진중한 눈빛, 손님에게 작은 디저트를 선물할 타이밍을 고민하는 눈치 같은 것들이 좋다. 빈 컵을 반납할 때 커피는 어떠셨나요,라는 의례적인 물음을 떨려하는 기류가 좋다.

 까닭없는 웃음을 연발하는 모임을 사랑한다. 너 도대체 왜 웃어? 라고 묻는 것마저도 웃긴 견고한 관계가 좋다. 메이플스토리를 즐기던, 학원이 끝나고 떡꼬치와 피카츄를 사먹던 시절의 나인 듯 모든 것을 제쳐두고 기쁨만 느낄 수 있는 그 상황을 사랑한다.

 나는 짙은 녹색을 좋아한다. 녹색의 것들을 돌보고 지켜보고 관심을 쏟는 나 자신도 좋다. 엄마가 일러준 대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흙을 만져보고 잎을 씻기고 물과 비료를 먹이는 생활을 사랑한다. 죽어가던 페페로미아를 살려냈을 때 나는 일주일정도 의기양양해졌었다.

 가족끼리 나가는 저녁식사를 사랑한다. 우리 사이에도 날카롭고 둔탁한 것들이 많이 날아다녔지만 우리는 끝끝내 그것들을 넘어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내일이면 기억도 하지 못할 대화를 나누며 삽겹살을 자르고 굽고 냉면을 먹을지 말지 토의하는 그 밥상머리를 사랑한다.

 텍스트를 다정하게 만드는 능력을 사랑한다. 'ㅇ'도 '응'도 아닌('어'도 안된다) '웅'을 남발하고 24시간이면 사라지는 게시물에도 메세지를 꼬박꼬박 남겨주는 친구를 사랑한다. 이모티콘을 연발하며 상온에 물통을 두면 세균이 번식하기 쉽다고 하니 자취방에 2L 물통을 치우라는 잔소리를 하는 게 좋다. 다정한 텍스트의 기반이 된 관심과 사랑의 능력을 동경한다.​


 시의적절한 조용함도 좋아한다. 타인의 불행을 알기에 자신의 행운을 큰 소리로 자랑하지 않았던 친구의 신중함을 느꼈다. 네가 잘되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두번, 세번 생각했을 그 마음이 고마웠다.​


 유튜브 너머의, 혹은 이웃이 반려하는 동물들을 좋아한다. 공원을 한바퀴 걸을 때 크고 작은 강아지들이 나에게 와주기를 마음 속으로 매번 간절히 바라고 있다. 견주들의 깍듯한 펫티켓에 나는 때때로 아쉬움을 느낀다. 하이얀 솜털들도 좋고, 그 사이로 드러나는 분홍색 몸뚱아리도 신기하다. 바닥과 발톱이 닿을 때마다 쵸쵸쵸춋 나는 소리가 좋고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걷는 강아지들의 신남이 좋다. 조금 더 경제력이 생긴다면 화분을 더 들일지 동물을 한 마리 들일지 행복한 고민을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