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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May 15. 2022

아빠는 이걸 어떻게 했을까

기간제 취업  주에 그런 생각을 했다. 기업 제도를 다듬어가던 시기의 어른들이 크나큰 실수를   같다고. 그들은  일주일에 닷새씩이나 일을 하자고 합의했을까? 하루에 8시간씩이나 일하겠다는 주장에 동의한 자식들은 누구인가? 아주 잠시의 과거, 혹은 현재의 누군가가  6 근무에 야근 수당 없이 밤늦도록 일했고 일할 것이라 생각하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럴 때 생각 나는 사람은 누구던가. 매일 저녁 식사에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드시던 그분, 평일 밥상머리에 잔소리를 곁들이지만 주말에는 잠이나 자느라 바쁘던 그분, 유년기를 같이 보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은근한 원망을 받던 그분, 그러니까 아빠.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지독하게 날뛰는 호르몬을 조절할 수 없던 나는 아빠와 대판 싸우고 용돈을 받으면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를 반복했다. 돈은 좋았다, 돈은 좋았지만 미안함을 그것으로 대체하는 그의 방식이 싫었다. 그리고 그걸 받고 슬쩍 해실대는 내 마음도 싫었다.

그런 일이 또 벌어진 어느 날, 나는 그가 나에게 쥐어진 오만 원짜리 지폐를 방바닥에 던져 버렸다. 이딴 거 필요 없어! 뒤지게 맞더라도 할 말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속상함을 표출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며 호응해오는 그의 분노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팔랑, 하고 떨어진 지폐를 주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방에서 나갔다.


몇 년 전 그는 목디스크 수술을 했다. 멀쩡한 소파에 위가 아닌 소파를 등받이 삼아 구부정한 자세로 바닥에 누워 목을 혹사시켰기 때문이다. 집에서 늘어진 러닝셔츠를 입고 다녔기에 새빨갛게 죽 그어진 작은 흉터가 속절없이 노출되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가정용 혈압계로 혈압을 재는 모습과 점점 넓은 공간을 차지해나가는 온갖 약병들이 처음에는 내 마음을 쿵 떨어지게 했더랬다.


오월을 맞아 조금 늦은 어버이날 선물을 했다. 사회 초년생에게 다소 비싼 카네이션 모양 케이크. 케이크 박스를 열어보라는 내 말에 당신은 지랄하네, 하고 웃었다. 지랄하네. 당신은 당신에게 돌아오는 고마움의 표현이 멋쩍을 때 그런 욕을 했다. 지랄하네. 지랄하네.


출근을 하면서 나는 임금피크제로 꺾여버린 그의 임금을 생각한다. 다행히 이런저런 공부와 취미를 가진 당신의 모습에 조금 안도하며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아빠는 그걸 어떻게 했을까?하면서. 몇십 년 출퇴근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알아주지 않는 사랑을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전달하는 게 옳은 방법인지 모르겠는 사랑을 어떻게 했을까. 그러다 지랄하네,라고 대답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그의 뒷목을 본다. 퇴근을 하면서 나는 다음 오월을 생각한다. 그다음 오월도, 다음다음 오월에도 지랄하네, 하는 웃음을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컴퓨터를 두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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