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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Jul 28. 2022

빙산의 일각 ; 송년과 송연

2021년을 보내며

그런 게 있다. 원래는 그것이 그 자리에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인 경우가 많다. 어느 날 갑자기 매일 보고 듣던 어떤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아름다웠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맥락도 전개도 근거도 없이 그냥 차에 치이듯이 발생하는 사건이다. 마음이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은 때때로 그렇게 아주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3년 차 대리가 어쩌라고요, 제 책임 아니라고요,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밈을 생각하면 아주 살짝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좋다는 걸, 아니 내가 너무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때 망했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 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는 그의 노랫말을 듣고 또 들으며 내 마음대로 위안을 얻었고 친구들에게도 그 노래를 들려주며 다녔다. 팬클럽 회장이냐, 지금 영업하는 거냐 그런 말들을 들었다. 그 사람이 노래가 안정적이긴 해도 직업이 가수는 아니었는데, 뭐 일종의 나만 아는 셀럽이 된 것이 사실이라면 사실이겠다.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나고 으레 겪는 순서는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 내가 경험한 것은 노랫소리뿐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만큼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막연한 운명론에 마구마구 빠져드는 내 모습이 싫었다. 어쩌려고 그러지, 좋은 사람이 아니면 얼마나 실망하려고 그러지, 나를 좋아하지 않을 만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지. 나의 마음이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것 같아 우는 밤이 많았다.



근데 나를 사로잡는 감정이 또 그것만은 아녀서, 샘킴의 ‘여름밤’을 들으면서 간질거리는 멘트를 준비했다가, 휘인의 ‘easy’를 들으며 나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니야! (아무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라면서 씩씩대다가, 아리아나 그란데의 ‘goodnight and go’를 들으면서 지난 연애의 슬픔을 다잡았다. 그야말로 난리였다.



연애 고자가 맞서 싸우기에 팬데믹은 너무 어려운 상대였다. 귀엽게 눈웃음 짓는 동생도, 처연하면서 똑 부러지는 언니도 아닌 코로나19는 어쩔 수 없이 단둘이 된 것 같은 식사 기회들을 빠르게 앗아갔다. 그의 사무실 근처에서 알짱대며 자연스러운 구실을 물색하곤 했는데 그것도 못 하게 된 것이다. 조급했다. 어떻게든 마음을 전해야 하는 게 아닐까? 뭐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뭐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글로 적기에 민망할 정도로 누군가를 꼬시는 방법, 몸과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하는 일에 경험도 없고 무지하다. 그 결과로써 나는 그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정말 ‘어떻게든’ 마음을 전해버리게 되었다. 아니 그게…. 해명을 하자면.



용감하게 디엠을 보내서 핸드폰을 잠시 던져뒀다가 답신을 확인한 것까지는 괜찮았다. 메시지를 보내고 리퍼를 받아야 해서 쿨한 척에 필요한 시간 확보가 수월했다. 어떻게 어떻게 만날 장소를 잡고 밥도 먹기로도 했다. 그가 싫어하는 음식도 알아냈고, 이모티콘도 주고받았고, 강아지 사진도 보여줬고, 방역 정책에 어긋나지 않는 시간을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무슨 일 있는 것 아니시죠?’라고 묻기에 나는 ‘그냥 일은 없고 너한테 관심이 있다’라고 답했을 뿐이었다. 친구에게 그에게 보냈던 디엠을 보여줬을 때 ‘왜 갑자기 고백하고 그러느냐’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당황했고 나는 거절당했다. 그냥 닥치고 밥이나 먹을걸. 뭘 그렇게 당당하고 솔직했을까. 다행히 며칠은 들이댔다는 용기에 조금 뿌듯하고 많이 후련한 마음으로 그의 SNS를 염탐하며 다음 찝쩍댈 기회를 생각했다. 하지만 기회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전 연인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는 한 달도 안 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화가 났다. 하지만 잘못한 사람이 없어서 울기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부른 노래는 나에게 불러준 노래가 아니라 유튜브에 올린 것이니까 내가 그걸 듣고 우리 오빠를 선점했다는 마음까지는 느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건 알겠는데, 잘못한 사람 중에 나도 포함되지 않는데, 좋아한다는 감정마저 수치스러워져서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게 아주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내 눈앞에 존재하기 시작한 시점은 가느다란 비가 내리는 늦봄이었고, 가을은 어떻게 견뎠는지 기억에서 삭제되었으며, 롱 패딩을 꺼내는 아침마다 그걸 의자에 던져놓는 저녁마다 이 인연도 마음속에서 내보내야지, 라는 다짐하고 있다.



그가 내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아낼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그가 안 것은 빙산의 일각만큼 뿐이다. 또 그가 수면 아래에서 어떤 모양새인지 알아가고 싶은 바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혼미했던 가을 동안 나는 아마 깨져버린 항아리 조각들, 그러니까 용기로서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그것들을 계속해서 만지면서 아픔만 더해갔던 것 같다. 이제는 이걸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는 걸 알아도 계속 방바닥에 두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는 게, 그래, 아름다웠던 게 유일한 변명이었다.



2021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고 우리가 한 살 덜 먹는 게 아닌 것처럼 그 빙산의 일각도 내 인생에서 완전히 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인연은 보내지 못했는데 올해는 보내야 한다니, 역시 감정은 케이크 자르듯이 잘라지지가 않는구나. 너무 서툰 내가 감정에 대하여 그나마 아는 것은 그것에 시간이라는 축이 있어서 그 지점을 지나오면 다 놓고 가야 한다는 점이다. 연애는 미수에 그쳤지만 음흉한 재범의 의사를 품은 사람처럼, 그렇게 능글맞은 해가 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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