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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Aug 18. 2022

나도 삼촌이 보고 싶어

안녕 삼촌. 근 4-5년간 보지 못했던 것 같네. 삼촌이 어떤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우리는 연락도 하지 않았지. 다만 모두가 있는 카톡방에서 삼촌이 종종 휙 나가버렸다 다시 초대당하는 상황이 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었어. 근데 있지, 삼촌은 원래 좀 이상한 사람이잖아. 그래서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삼촌이 우리 엄마로부터 독립을 하고 우리 집에서 나갔을 때, 나는 삼촌의 방을 쓰게 되었고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지금 그 방은 여전히 좁고 항상 몸과 마음을 돌보듯 잘 치우고 정돈하려 하지만 늘 어질러져 있긴 해. 그래도 소중한 내 공간이야.


더불어 옆 마을에 주말 오후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갈 수 있는 짧은 여행지가 생긴 것도 나와 오빠에게 참 신나는 일이었지. 핸드폰도 없고 개념도 없던 초딩 둘이 갑자기 집에 들이닥쳐도 항상 집에 있던 삼촌이었어. 삼촌이 없어서 다시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던 것 같네. 삼촌의 집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어, 늘. 다 마신 음료 캔들, 담배 냄새, 기타, 물건이 적은 것 같은데도 항상 어수선했지. 재밌게도 그런 환경은 어린 남매가 탐험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기 너무나도 적합한 자취방이었어.


자라면서 짧은 여행을 함께 했던 오빠와의 사이도, 여행지의 주인장인 삼촌과의 사이도 멀어지고 우리는 엄마 아빠가 주관하는 모임에 시간이 나면 참석했다 우연히 만나는 관계가 되었지. 그때쯤이었던 것 같아. 삼촌이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 말이야. 파리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박박 우기는 삼촌의 진심과 오기 어린 변호를 들으면서 나는 삼촌의 말은 그냥 듣지 말자고 생각하게 됐어.



있잖아 삼촌, 내가 5년 정도의 기간 동안 삼촌과 만나지 못했던 건 글쎄,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건 내가 나에게 지독하게 자신이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야. 삼촌은 한평생 진득하고 성실하게 한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 꽤나 똑똑했는데도 말이야. 나 또한 그 스타트를 끊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느라 자존감이 땅으로 꺼지고 있는 중이야. 그래서 친척 어른들을 뵙기 위해 대구로 군산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 삼촌을 만나러 갈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닐 텐데 삼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어.



삼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후 엄마는 하루 동안의 기억을 잃었어. 그 하루 동안 오빠와 나에게 삼촌이 죽었다고? 혼자 살았었지? 그럼 자살한 거네? 하는 질문을 끝없이 반복하며 끝없이 삼촌이 죽었다는 사실을 머릿속으로부터 밀어냈어.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무서웠지만 다행히 엄마는 정신을 되찾았고 삼촌의 유골을 뿌리러 대구에도 잘 다녀왔어.


그런데 삼촌, 삼촌이 죽고 그다음 날. 아빠도 오빠도 출근을 하고 내가 엄마와 단 둘이서 집에 남아 있던 그 반나절이 참 끔찍했어. 엄마는…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제사를 지내다가 살짝 눈물을 보인 것 외에 단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엄마의 소리를 잘 듣고 있다가 울음소리가 나면 안방으로 달려가 그를 위로해주어야 했어. 그 뒤로 나는 내가 얼마나 청력에 민감한 사람인지 시험당하는 것처럼 주변에서 누군가 울음소리 비슷한 소리라도 내면 깜짝 놀라고 마음이 쿵 떨어지는 걸 경험하는 중이야.


그렇게 4개월이 지나고 며칠 전 나는 교회 수련회에 다녀왔어. 몇 년만의 수련회라 약간은 신나고 약간은 두려웠지. 삼촌은 교회 수련회에 참석해 본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네. 저녁이면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데, 청년 수련회에서 무슨 메시지를 전하겠어? 당연히 열심히 살아나가잔 말을 하겠지. 살기 힘든 세상사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아멘! 하고 당차게 기도를 하는데 삼촌 생각이 나더라. 내가 삼촌을 보고 싶어 하는구나, 깨달으니까 어떻게 그쳐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이해가 좀 안 됐어. 남들 다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기도하는 데 왜 나만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지.


사실은 말야, 삼촌이 가고 난 직후에 나는 태권도를 하다가 삼촌이 갑자기 생각나서 거의 울 뻔한 적도 있긴 있다? 그래서 내가 눈물의 발차기를 날렸다는 거 아냐. 그때 이후로는 엄마를 시시때때로 관찰하느라 삼촌의 장례식에 가지 못해서 너무 서운하다는 걸, 이렇게 가버린 삼촌이 너무 밉다는 걸 알아차릴 새가 없었던 것 같아.



4개월 전으로 돌아가 삼촌을 이렇게나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상상을 했어. 하지만 불가능한 상상을 멈추지 않는 건 건강한 애도가 아니라고 생각해. 건강한 애도… 삼촌, 당신이 내 지인 중 첫 번째로 나에게 진짜 죽음을 보인 사람이야. 당신이 밉고 따지고 싶은 게 많지만 삼촌은 삼촌을 흘려보내라고 말하려나. 삼촌이 내 남은 삶 속에 얼마나 기억되고 어떤 감정으로 밀려올지 나는 전혀 모르겠어. 나는 삼촌이 좋은 곳에 가 있다는 확신도 없지만, 삼촌이 있는 곳이 어디든 나의 사랑이 닿기를 믿을게. 사랑했어. 고마웠어. 잘 있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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