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화 Aug 25. 2022

당신이 우는 게 싫어서

 요즘 나는 그런 종류의 불안에 쌓여 있다. 아슬아슬한 크기의 물풍선 하나를 집에 두고 다니는 상상. 집에 있을 때는 그것을 감시할  있지만 외출하는 동안은 그것이 터져버릴까 항상 걱정하는 중이다(어느 쪽이든 그것이 터지는 것을 막을  없다). 어느  집에 도착했는데 풍선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눈물이 집안 가득 쏟아져 있고 풍선은 조각조각  채라면. 나는 무릎을 꿇은  손걸레로 바닥의 눈물을 훔쳐내야  것이다.


 우울과 불안의 역사 속에서 성장해 온 나는 친구와 멀어져서, 성적이 떨어져서, 취업이 어려워서 힘든 마음을 엄마에게 낱낱이 고하고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울 일이 아니야.’라는 문장. 엄마는 우는 사람을 달래는 방식으로 해결책 찾아주기를 택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앞에서 나는 종종 ‘정말? 정말 울 일이 아니네!’하면서 눈물을 뚝 그치기도 했고 ‘정말? 정말 이게 울 일이 아니야?’라며 더 울부짖기도 했다. 어쨌거나 우는 쪽은 나였고 받는 쪽은 그였다.


 외삼촌이 죽은 뒤 엄마는 물풍선처럼 조마조마해졌다. 아주 어릴 적 외할아버지 제삿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였던 그의 눈물을 최근 몇 주간 자꾸만 나에게 들키는 중이다. 당신의 눈물은 강함일까 약함일까. 그리고 그동안의 눈물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동생이 멀리 가버려서, 꿈에 돌아가신 엄마가 계속 나와서, 딸이 실직의 슬픔을 겪어서 우는 울음은 나에게 마치 방파제가 무너지는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어디론가 잘 숨겨둔 건지 보이지 않았던 바다 같은 슬픔이, 내가 어쩔 도리를 알지 못하는 세상이 나에게로 몰려오는 것 같았다. 갈라진 틈을 타고 들어와 나를 덮치려는 무언가는 너무 거대하고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으로, 내 세상을 전부 흔들어 놓기에 충분해 보인다.


 엄마의 눈물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 이기적이고 유아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침대에 누워 흐느끼다 문득 슬픔을 멈추는 법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작 스물여덟이지만 벌써 스물여덟이므로. 불안 장애에 시달리건 실직을 당했건 외삼촌을 잃었건 눈물을 멈추지 못하겠다며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는 행위는 그만해야 할 때가 왔다고 느낀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이 내 가족을 지키는 담담한 존재가 될 타이밍 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풍선이 터지든 말든 나는 이제 집으로 되돌아가 슬픔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집을 더럽히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할 노릇이 되었다. 나는, 나는 엄마가 우는 게 싫으므로 이디야에서 1인 팥빙수를 사다 가져다주고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컴퓨터와 아이패드를 들여다본다. 아직도 이렇게나 작은 일을 하고 있다고 불평하거나 침전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방파제가 되어 주어야 할 차례. 기꺼이 의연해지고 싶은 밤이다.

이전 10화 수천 개의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