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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Sep 08. 2022

나의 덕심은 P.S. I love you

나는 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셨다 하면 줄 이어폰을 두 귀에 꽂고 끝나지도 않은 음악을 다음 곡으로 넘기고 넘겨가며 듣던 학생이었다. 엠피쓰리 컬렉션 또한 화려하여 3만 원짜리 이름 모를 기계에서 아이팟 터치, 아이팟 나노, 아이팟 클래식 등 스마트폰으로 자유롭게 음악을 다운로드하고 스트리밍 할 수 있을 때까지 다양한 기기로 음악을 즐겼다.


나는 가수다 또한 내가 한때 심취했던 프로였다. 리스너로서의 음악성을 검증받기 위해 별로 취향이 아닌 무대에도 심연에 잠긴 척 말수를 줄이기도 했다. 자우림의 ‘가시나무’를 들으며 사춘기 감성을 저격당해 주말 저녁 가족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수치스러운 눈물을 죽죽 흘린 적도 있다. 무릇 중학교 2학년을 울리는 음악이 진짜 음악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춘기를 휘두르는 힘을 가진 그런 곡 말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열심히 춤을 추기도 했다. 나름의 댄스 동아리에서 첫사랑도 경험하고, 중앙공원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청소년 수련관 연습실 한켠에는 연습하러 온 이들의 엠피쓰리들이 종류별로 쌓여 있었다.


수업 시간에 머리카락 안쪽에 이어폰을 숨겨두고 음악을 몰래 듣다가 엠피쓰리 뺏기기 일쑤였다. 꿈에, 벌써 일 년, Memories, 거리에서,… 사랑했잖아…, 다이나믹 듀오 등등. 내 덕심은 그렇게 질 덕심이 아니었던 터라 컴퓨터로 cd를 구워서 덩치 큰 플레이어(보통 때는 영어 학원 딕테이션 숙제에 쓰이던 것)로 굳이 굳이 자면서까지 음악을 들었다.


생각도 못할 정도로 음악이 좋았고 음악 뒤에 숨을 수 있다는 연유로 그를 사랑했다. 나는 내가 아이돌 가수나 천재 프로듀서 정도는 될 줄 알았고 그런 꿈이 멈출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러니 좋아함이 흐려져 갈 수 있다고는 당연히 생각지 못했다. 여러 플레이리스트를 잃어가는 와중에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이력서를 제출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실력 좋은 가수의 명곡 메들리를 라이브로 듣는 ‘킬링 보이스’ 콘텐츠가 자주 뜬다. 얼마 전 박정현의 영상을 보며 추억에 젖다가 멈칫했다. 그 부분은 바로 ‘P.S. I love you’의 ‘사랑해요’라는 가사. 사랑한다니… 이런 돌직구는 한국의 생산형 발라드를 제외한 쿨하고 건조한 ‘요즘 음악’ 잘 보기 힘든 것이 아니던가? 갑자기 저한테 왜 이러세요.


물론 나도 2020년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쇼미 더 머니와 스맨파를 보고 악동뮤지션과 백예린, 혼네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어 버전만 있었던 빌보드 차트의 트랙이 멜론에 있는지 열심히 뒤지더라도 사운드 클라우드는 죽어도 안 듣는 취향은 그대로다. 스트리밍 서비스도 어느덧 멜론, 벅스, 지니, 스포티파이를 지나 유튜브 뮤직에 정착했다.


어떤 방식, 어떤 기기, 어떤 느낌의 곡들이건 나는 아직도 그들 사이에 숨고 싶을 때가 많다. 내 안에 내가 많고, 당신의 쉴 곳 없었던 질풍노도 감성을 오글거리다 욕하지 않고 늘 다정하게 위로를 건넸던 그들. 노래방에서 몇 시간씩 되지도 않던 노래를 불러 젖히던 느낌, 싸이월드 비지엠을 고심해서 고르던 그 감성,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들끼리 친해져 놀이동산에 놀러 가도 서로 이어폰을 꽂고 놀이기구 차례를 기다리던 이상한 장면까지 나의 일부를 구성하게 된 곡들을 침대 아래의 보물 상자처럼 마음 한 켠에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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