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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Sep 01. 2022

28세에 아직 뭣도 되지 못한 건에 대하여

나는 한국 사람들의 나이 후려치기를 끔찍이도 싫어그 어폐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근거를 항상 머리에 정리해 두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점차 한 해 한 해 실패로 마감하여 스물여덟에 정규직 근로계약을 맺지 못한 문과대학 출신 1인이 된 지금, 정말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스멀스멀 걱정을 하게 되고 혹여나 셀프 후려침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앨범을 냈다 하면 차트를 씹어 먹고 온갖 예능에서 황태자 취급을 받던 아이돌 그룹을 보면서 자랐다. 그들이 20대 초반에 이룩한 공고한 업적을 보면서 커리어란 20대 때 다 완성해야 되는 건 줄로 배웠다는 말씀. ‘최연소’라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남발되었고 그것을 내 인생의 타이틀(중 하나)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약간 흥분되고 약간 아슬아슬했다.


아이돌 오빠야들이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라 여기저기 상을 받으며 돌아다닐 동안, 우리가 기똥차게 공부해서 얻게 된 것은 4년제 대학의 학사 학위 정도였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은 참으로 별것이었으나 그것을 열어보니 선생님들이 말했던 것만큼 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입시에 성공한 편이 아니니 그렇다 쳐도, 이상하게 원하는 대학에 간 친구들도 비슷한 넋두리를 하곤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만 확연해져 방대하기 그지없는 학문의 어느 길목에서 가장 멍청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쯤 졸업장을 툭하니 전해받았을 뿐이다. 세상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은 그런 거였다. 뭣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무엇이라도 해내야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


며칠 전 교회 수련회에 갔다. 청년부 모임에서 막내로서의 시기가 끝날 때쯤 코로나가 터져버려 중간 정도의 선배로 존재할 시간이 도려내진 터라 다시 모인 모임에서는 하드웨어만 커버린 애매한 언니가 되어 있었다. 20대 초반의 아이들은 나와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 친구도 있고,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단백질 간식을 챙겨 오며 바비큐를 몇 점 먹었는지 세는 등의 열정을 보여주는 친구도 있었다. 극악무도한 절식의 이유는 젊은 날 몸을 까보고(!) 싶다는 것. 슬프게도 나는 그 동생에게 서른이 넘은 많은 사람들이 바디 프로필을 흔쾌히 찍는다는 사실을 덧붙이지 못했다.


도대체 왜 굳이 20대 여야, 30대여야 하는 걸까. 왜 그것도 꽤 괜찮은 타이밍이야,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던 걸까. 28세가 유의미한 최연소 타이틀 따위는 고사하고 어떠한 대단한 한 줄도 없이 그저 직장에서 실수만 하지 않기를 바라고, 큰 기대도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날의 헛발질을 곱씹을 뿐인 나이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걸까. 위로를 건네기 위해 발행된 책들은 나는 27살 때 이 정도였다, 너도 할 수 있다 말하지만 나는 28세에 아직 무엇도 되지 못했는 걸. 그런 나에게, 이렇게 될 수도 있는 너에게 아직 할 수 있다고 말해주어도 되는 걸까.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이여! 다 같이 20대에 대한 집착을 좀 버립시다! (그리고 원래 하자고 했던 만 나이 정책은 시행합시다!) 그렇게 소리치기엔 내가 너무 작디작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떵떵거릴 근거가 없으니 그 대신 나에게 속삭여주는 걸로 대신하도록 한다. 어떤 이유를 들어도, 아니 이유가 없어도 괜찮으니 20대의 마지막과 30대를 잘 살아 보자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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