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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작가 May 06. 2024

[바닥]

약자가 되어보니 그들의 바닥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약자가 되어보니 그들의 바닥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물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사람은 본디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바닥이 보인다고들 한다. 우습게도 이 회사 조직에서 가장 약자인 막내, 여자, 신입사원이 된 나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선배들의 밑바닥을 열심히 구경당하는 중이다.

요즘 많이들 그렇다고 들었다. 조직의 구조가 역피라미드가 되어 선임들은 넘치지만 새로운 인력충원은 아주 미미하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인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내 나이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나이의 직원은 이곳에서 나 한 명이며 그 위로 선배들은 적어도 나와 10년 이상의 터울이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때, 자기 시간을 내서라도 알려주고 도와준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다 너를 위해 해주는 말이니 고깝게 듣지 말라며 다른 사람들이 나눈 나에 대한 험담들을 굳이 굳이 전해준 사람은 두 명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들을 성실히 도 양산해 내고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고 역겹게도 웃어댈 뿐이었다.

처음 입사한 날부터 두 달간은 깔끔한 양복을 각 잡아 차려입고 꽤 값비싸 보이는 소가죽 가방도 들고 다녔다. 그동안 이 조직 안에선 내가 금수저이며 나이도 어린애가 연줄을 타고 이곳에 꽂아진 것이라고 소문이 나버렸다. 그 소문이 그중에서도 눈치 없는 몇 인간들을 통해 내 귀에 꽂아지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정장을 버리고 헌 옷들을 입고 다니며 귀찮은 가방도 굳이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야말로 맨몸신사였다. 어느 날이었나, 엘리베이터에서 선배들이 어제 입었던 옷과 비슷한 단벌에 까만 운동화를 신은 나를 보고는 유심히 도 스캔해 대기 시작했다.

“그 운동화 어디 거야? 편해 보이네”

이 말은 곧

“거지 같은 운동화 신고 다니던데, 쟤 금수저 아닌가 봐?”라는 소문으로 이내 바뀌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종이 쇼핑백,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질 않나 똑같은 옷을 며칠 째 돌려 입었으나 이런 조금의 퍼포먼스만으로도 사람들의 태도는 삽시간으로 변해갔다.


“거기서 뭐 해?”


나는 보고 있던 수첩을 황급히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아닙니다”


당황한 목소리를 감추고 웃어 보였다.


“자네는 담배 안 피나? 그럼 곤란한데?”


“아닙니다, 저도 전담 핍니다”


“아? 여긴 다 연초파야.”


“예 그렇습니까.”


멋쩍게 웃어 보이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오늘 첫 출근 룩으로 입고 온 이 옷이 이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내일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몇 년간 끊었던 연초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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