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아.
오늘은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빠는 어린 시절부터 돈을 스스로 벌어야 했다.
학비도 스스로 벌어서 내야 했고 생활비도 스스로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그나마 가진 것이라곤 학벌뿐이라 남들 보단 편하게 과외를 주로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음대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업을 하고 싶다고 추가로 구할 수 있다면 다들 부자가 될 것이다.
손님을 구하고 싶다고 손님이 와주는 건 아니니 말이다.
아빠가 처음에 과외를 시작할 때는 참 책임감도 없는 그저 어린 머저리였다.
2번 2시간 4주 40만 원.
이게 아빠의 첫 몸값이었다.
쪼개면 시급 2만 5천 원이었구나.
그때부터 아빠는 한 시간에 2만 5천 원 보다 적은 가치를 학생에게 제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최대한 딴짓을 많이 하고, 학생과 친해져야 한다는 명목 하에 최대한 딴소리를 많이 해서 수업하는 시간을 줄이며 숙제를 안 해왔으면 눈 앞에서 숙제를 하게 했다.
학생의 사정으로 수업을 못하게 됐다면 해당 수업을 한 것으로 처리했다.
학생의 부모님이 안 계시면 학생과 작당하고 수업을 일찍 끝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엉망진창이었구나.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아빠는 내가 받는 돈에 비하여 이 정도면 꿀 일자리구나, 내가 이득을 봤구나 하며 좋아했었다.
숫자와 행동을 철저하게 저울질하면서 나의 행동이 나의 몸값보다 적게 조절한 것이다.
당연히 그런 수업이 오래 지속될 리가 없다.
당연히 그런 수업이 입소문을 탈리가 없다.
그렇게 몇 번을 잘리고 어렵게 수업을 다시 구하고를 반복하면서 뭔가 잘못된 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보기로 했다.
비록 한 시간에 2만 5천 원의 몸값으로 고용되었지만,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제공하기로 했다.
학생의 사정으로 수업을 빠지게 되면 당연히 보충 수업을 해주기 시작했고, 시험 기간이 임박했다면 추가 비용 없이 보충 수업을 해줬다.
매번 설명이 길어져서 2시간을 훌쩍 넘겨 수업을 했고(물론 학생은 힘들었을 것이다.) 질문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받아주었다.
추가적으로 공부했으면 하는 문제집은 사비로 사서 전해주고 진도 체크를 해주었다.
학생이 힘들어할 것 같으면 간식을 사서 방문하기도 했다.
이 정도 정성에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의 사고방식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한 것이다.
아니 나는 시간당 이 정도의 일을 하기로 되어있는데 그보다 일을 더 해주는 게 말이 돼?
내가 자원 봉사자야?
이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었다.
주기로 한 것보다 더 주기 시작하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업 소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소개가 들어왔다.
아빠는 학교도 다녀야 했고, 그 많은 수업을 다 진행할 수는 없었기에 상당히 많은 수업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거절이 기폭제가 되어 더 많은 금액을 줄 테니 수업을 해달 라라는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결국 나의 가치를 올리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남들의 평가이다.
그리고 남들의 평가를 올리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의 행동이다.
그리고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나의 태도이다.
당장의 손해를 따지지 말아라.
이게 당장의 손해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이 초보에게는 없다.
큰 관점에서 바라볼 역량이 초보에게는 없다.
그렇기에 그 일이 남들과의 약속이라면 항상 초과 달성을 위해 노력해라.
그것이 네가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첫걸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