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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18. 2020

제목이 스포일러

영화 <나를 찾아줘> 리뷰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판타지는 세상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어릴 적 모두가 필수로 보는 동화에서부터 항상 공주님과 왕자님은 결혼 후 영원한 행복을 암시하였고 이렇게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결혼’은 인생의 필수적인 요소로 세뇌되었다. 마치 ‘결혼’하지 않은 인간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이 사회. 그러나 진실을 말하지 않던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만교의 소설 제목 처럼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것을. 가장된 행복으로 위장한 로맨스 영화 같은 완벽한 결혼 생활, 그 껍질을 벗겨보니 장르는 어느새 스릴러가 되어 있었다.  
 
2013년, 2백 만부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심리 스릴러 장르의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길리언 플린의 소설 <나를 찾아줘>. 대게 스릴러가 가져다 주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깬 이 소설은 꿈과 희망으로 빛나 보이던 어떤 부부의 결혼 생활로 이야기로 시작했다. 아름다운 결혼 생활이 주는 환상을 비틀어 이를 완벽한 악몽으로 다시 그려낸 소설 <나를 찾아줘>는 이듬해 데이비트 핀처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재탄생하였다.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름답고 똑똑한 여인 에이미 던(로자먼드 파이크 분)은 유명 동화책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주인공이다. 그녀가 신문기자 닉 던(벤 에플렉 분)과 결혼한 이후 두 사람은 이내 누구나 부러워하는 완벽한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 5주년이 되던 해 아침, 에이미가 사라져버렸고 하루아침에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혼란에 빠진다. 에이미의 실종에 떠들썩해진 세상, 그녀가 남긴 결혼기념일 편지를 통해 추적을 시작한 경찰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닉을 지목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나는 증거들은 닉이 에이미를 살해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세상은 이제 닉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간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닉,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소설과 영화 <나를 찾아줘>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어떤 비밀스런 장소나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은 채 오로지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로 만들어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진짜 진실을 둘러싼 채 벌어지는 사람들의 심리전이다. 그리고 에이미 역의 로자먼드 파이크와 닉 던 역의 벤 에플렉은 연기력은 소설이 주던 이 매력을 가장 극대화하여 표현하며 영화를 이끌어 나갔다. 특히 주인공 에이미는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 능숙하게 사람을 홀리는 여러 페르소나를 쓸 줄 아는 여인. 상처 받은 가녀린 영혼이 되었다가도 필요한 순간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 악녀가 되고 사람들이 원하는 웃음을 짓는 에이미를 연기한 로자먼드의 연기는 보는 관객들마저 속인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호한 경계에서 서서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진 남자가 되기도 하고 가증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하는 벤 에플렉 역시 에이미와 잘 어울리는 닉 던을 제대로 표현했다.  
 

이처럼 배우들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실제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듯한 영화 <나를 찾아줘>. 영화를 만든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원작의 줄거리를 그대로 다시 그려냈다. 책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머지 때로 각색만이 주는 재미는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이런 결핍은 감독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꾼 장면에서 다시 충족된다. 곤란에 빠지자 자신을 오랫동안 짝사랑한 부자 데시(닐 패트릭 해리스 분)을 찾아간 에이미. 원작 속 그녀는 수면제를 먹인 후 데시를 죽이는 장면은 영화를 통해 침대 위에서 성관계 도중 목을 칼로 긋는 대범한 행위로 바뀌어 좀 더 극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한 편,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취향을 잘 드러낸다. 그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암시하던 원작과 달리 결혼 생활 자체를 다시 보여주는 영화. 진짜 압권은 가장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이루어내는 조화. 침대에서 눈을 뜨며 사랑스러운 여자로 보였던 에이미는 마지막 장면에서 같은 옷, 같은 침대에서 같은 자세로 눈을 뜨지만 이제 그 미소를 보는 관객은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남는 다면 바로 제목의 번역이다. 영화의 원제는 <Gone Girl>, 직역하자면 ‘사라진 그녀’가 된다. 그러나 영화나 책 모두 한국어로 번역되며 제목이 <나를 찾아줘>가 되었다. 에이미 실종에 대한 진실을 풀어나가는 것이 핵심이건만 제목은 벌써부터 에이미가 스스로 사라졌다는 것을 암시하며 스포일러 짙은 모양새가 되었다. 이미 짐작되는 내용임에도 영화나 책이 주는 매력이 아쉬움마저 뛰어 넘는 <나를 찾아줘>. 두 부부의 목숨을 건 숨바꼭질의 끝을 직접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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