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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10. 2021

한 잔의 커피처럼 삶의 순간을 음미하는 법

영화 <바람커피로드> 리뷰

 소크라테스는 “음미되지 않은 인생은 사는 보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지만 이 시간을 음미할지 혹은 그저 내버려 둘지는 그 시간을 마주하는 사람의 몫이다. 어떤 이들은 잡을 수 없는 것에 눈이 멀어 현재를 잃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과거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인생을 음미한다는 것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울러 인간이 소유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들을 삶에 새기는 것과 같다. 물론 어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인생을 ‘음미’ 하기도 한다.  
 
 커피 트럭 풍만이의 주인 이담은 커피 향을 따라 전국을 떠도는 커피 유랑자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왜인지 서울을 훌쩍 떠나 제주에 10년 동안 뿌리를 내렸던 그는 오랫동안 운영하던 카페를 접고 홀연히 여행을 떠났다. 그가 선택한 여행의 동반자는 커피 트럭 풍만이. 단 둘이 떠난 여행이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였다. 커피 메뉴는 오로지 하나, 핸드드립. 그 흔한 에스프레소 머신 하나 없는 트럭에는 오로지 직접 원두를 가는 소리와 뜨거운 물을 내리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면식이 없던 현진식 감독과 이담의 인연 역시 커피로 이루어졌다. 이담이 제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 단골손님이었던 이가 바로 현진식 감독의 아내였던 것.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훗날 영화 <바람커피로드>가 되어 인생을 말 그대로 ‘음미’하며 살아가는 이담의 이야기로 태어났다. 이담에게 인생은 커피와 같다. 커피의 쓴맛처럼 사실 인생도 쓰다고 말하는 이담. 하지만 그 쓴맛 뒤에 오는 다양한 삶의 맛들 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인생을 음미한다는 것이다. 이담은 그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커피 트럭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의 인생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본인이 겪지 못한 시간까지 누리는 시간 부자이기도 하다. 그와 커피로 닿은 인연 하나하나가 결국 다 이어져 음미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담에게 여행은 인생을 음미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런 이담의 철학이 담겨서인지 영화 <바람커피로드> 역시 커피 향을 담은 여유를 안고 있다. 현진식 감독은 처음부터 영화를 과감하게 흑백으로 촬영했다. 매번 색감으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던 영화들 틈에서 떠오르는 흑백 영화는 우리가 평소에 느끼지 못한 것들을 새삼 부각한다. 색을 빼니 가장 먼저 소리가 다가왔다. 원두를 갈아내는 소리, 뜨거운 물이 쪼르르 떨어지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발소리, 그리고 숨소리. 담담히 말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담의 여행이 주는 메시지가 천천히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여기에 풍미를 더하는 건 바로 음악. 사실 밴드 파울로 시티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현진식 감독은 영화와 꼭 어울리는 파울로 시티의 음악을 삽입하여 흑백 영화가 주는 깊이를 더했다.
 

우리가 무심코 건네는 ‘커피 한 잔 할래’에는 사실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그 한 잔에는 커피를 나누는 사람들만큼의 시간이 담기고 얽힌 인연이 담기고 이야기가 담기며 그 맛을 더한다. 이담은 이런 인생을 담은 커피와 함께 전국을 떠돌고 또 나아가 세계를 여행한다. 그리고 이 뒤를 따르는 영화 <바람커피로드>는 결코 서두르거나 재촉하는 법 없이 묵묵히 이담을 바라보며 그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이담은 현재 연남동에 '바람 커피'라는 카페를 운영한다. 마치 정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자신의 SNS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커피 여행 중'. 언제 이 여행이 끝날 지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건 바람의 결을 따라 흘러가는 무수한 시간들이 이담의 여행 안에서 모두 음미될 것이라는 점. 그의 인생은 지금 어떤 맛을 음미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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