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흐름에 맡겨진 나의 흔적
할머니가 바닥에 앉아 채소를 팔던 그 장소, 문성마트 앞에 서 있다. 문성마트는 새 간판을 달고 리모델링했지만, 여전히 그 장소에 있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옅어지지 않는 것처럼.
초등학교 때 빼놓을 수 없는 일과는 장사하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다 드리는 거였다. 끝나는 시간쯤에 맞 다시 할머니를 모시러 가는 것도. 할머니가 머리에 이고 양손으로 나누어 들고, 남는 짐은 내가 들었다. 도보로 30분 거리의 시장. 환갑이 넘은 할머니와 갓 초등학생이 된 나에게는 버거운 양이고 거리였다. 짐이 무거워 다른 손으로 바꿔 들다 찾길 쪽으로 가면 “안으로 온나” 하고 내가 서야 할 방향으로 고개를 저으며 몇 번이고 말씀하셨다.
집 앞에는 주인은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농구장만 한 텃밭이 있었다. 할머니는 땅을 고르고 무엇이든지 심었다. 종류로 따지면 웬만한 마트 수준이다. 콩, 상추, 깻잎, 옥수수, 고추, 호박, 가지, 배추, 열무, 얼갈이…. 잡초를 매고 수확하고 다듬고 팔고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수확해서 만든 콩잎, 깻잎장아찌 같은 반찬도 담아서 갔다. 하늘이 붉어질 무렵 할머니에게 가면, 남아있는 채소가 없었다. 할머니의 채소는 크진 않았지만, 동글동글 윤이 났다. 농약 없이 비료를 만들어 키운 채소라 모양이 고르지 못하고 제각각이었지만 부드럽거나 단단했다. 할머니의 정성을 아는 사람들은 자주 지갑을 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는 가게도 없이 바닥에 앉아 장사하는 할머니가 부끄러워 곁으로 갈 때면 주변에 아는 친구들이 있는지 먼저 두리번거렸다. 문득 할머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할머니는 안 창피해?”
“챙피하기는 뭐가 챙피하노? 느그들 잘 키울라믄 이건 아무것도 아이다.”
스무 살에 남편을 보내고 한 살짜리 아들을 업고 국수 장사, 도넛 가게, 담뱃가게, 쌀장사, 안 해본 장사가 없으셨단다. 할머니에게 문성슈퍼 앞 장사는 수치스러움과는 견줄 수 없는 생계의 장소였다. 아들 하나 잘 키워 손녀들 보며 이제 좀 편안히 사나 했는데 서른 후반인 아들을 사고로 먼저 보냈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보다 하늘이 없다는 말이 할머니에게는 더 맞아 보였다. 한 사람에게 계속 이렇게 시련을 줘도 되는지.
봄날 저녁이면 고사리 삶는 향이 온 집에 퍼진다. 동이 트기도 전에 나가, 할머니 몸집만 한 자루에 고사리를 가득 따오셨다. 얼굴과 손에 있는 나뭇가지에 긁힌 흔적이, 흙투성이의 몸빼 바지가 할머니의 고된 하루를 설명했다. 겨울이면 일당을 받고 귤을 따러 가셨다. 주인이 파치는 원하는 대로 가지고 가라고 했다며 가방에 눌러 담아 온 탓에 터진 귤도 있었다. 하나라도 더 담아가 손주들에게 먹이려는 마음이 전해져 먹으면서 목이 메었다. 고사리는 푹 삶아 잘 말려서 시장에 팔았고, 귤을 따고 받은 일당은 생활비 통장으로 갔다. 할머니의 매일은 차곡차곡 우리를 키웠다.
할머니가 야속했던 적도 있다. ‘절대 할머니처럼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던 날, 그 날은 지인이 사 온 과자종합선물세트를 꺼내는 날이다. 네 자매가 할머니 앞에 두 손 모으고 앉아 침을 삼킨다. 이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만약 하나씩 고르게 해준다면 어떤 걸 고를까? 동생이랑 다른 걸 골라서 바꿔 먹을까? 고민하는 사이 상자가 열렸다. 껌부터 연양갱, 캐러멜, 봉지 과자, 쿠키까지. 얼핏 봐도 10종류는 넘게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어른 손바닥 두 개 크기만 한 봉지 과자 하나를 골라서 네 개의 그릇에 똑같이 나누어주셨다. 하필 저 많은 과자 중에서 내가 먹고 싶지 않았던 과자를. 예상했지만 빗나가길 바랐던 일들이 펼쳐진다. 공평했지만 종류와 양에 대한 선택권이 없어 공정하지 않았다. 과자를 받고도 슬펐다. 과자를 앞에 두고도 당기지 않았다. 왜 할머니는 하나씩 주지 않고 아끼는 걸까? 종합선물세트 안의 과자에는 벽장 냄새가 뱄고, 병에 담긴 노란색 델몬트 주스는 갈색이 되었다. 아끼다가 똥이 되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선물 세트 하나를 혼자 다 먹어야지. 제일 좋아하는 걸 먹고,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도 먹고, 질리면 내일 또 먹고 그렇게 다 먹을 때까지 매일 매일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분명 안 닮고 싶었는데,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누가 선물을 주면, 포장을 쉽게 뜯지 못한다. '이거 진짜 내가 뜯어도 될까? 돌려줘야 할 수도 있으니까 살살 열어야 겠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좀 이따 써야지 했던 로션은 유통기한이 지나고, 나중에 먹으리라 하고 남겨둔 가장 예쁜 모양의 사과는 썩는다. 요즘은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전복을 구워 가장 통통한 부분을 먼저 먹고, 선물을 받으면 포장지부터 박박 뜯고 내용물도 개봉한다. 바로 쓰거나 먹을 수밖에 없도록.
90년대 초반 우리 집에도 컴퓨터가 들어왔다. 가장 좋은 사양에, 자판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컴퓨터 책상까지 풀세트로. 과자 한 봉지를 넷으로 나눠주는 할머니는, ‘휴지 아껴써라' '물 잠가라’ 쉬지 않고 잔소리를 했던 할머니는, 물건을 살 때만큼은 가장 좋은 걸로 고른다. 가격이 비싸도 질이 먼저였다. 생선은 눈알이 생기가 있고 탱탱하고 살이 도톰한 걸로, 옷이나 신발은 또래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메이커 있는 브랜드로, 책상은 윤이나는 원목으로 사주셨다. 그래서 할머니가 사주신 건 늘 믿음이 갔다. 어떤 안목으로 고르는지 알기에.
몇 달째 어떤 차를 살 것인지 남편은 고민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모습을 엿보면 역시나 차에 대한 유튜브나 블로그다. 고민의 이유를 물었더니 A차는 연비는 좀 떨어지지만, 디자인도 무난하고 가격 대비 스펙이 좋단다. B차는 연비도 좋고 디자인도 좋은데, 가격이 비싸고, 자연히 보험이랑 세금도 비쌀 거란다. 나는 뭘 더 고민하냐며 바로 매장으로 가서 B차의 총금액을 현금 결제했다. 남편은 눈을 최대치로 뜨며 너무 비싼 거 아니냐며, 어떻게 이렇게 모아두었냐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나는 한마디 해 주었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 아낄 수 있을 때 아끼고, 뭘 사야 할 때는 제일 좋은 걸 사라고.”
할머니 나 잘했지? 이 차에 할머니도 모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분명 잘했다고 칭찬해 주실 텐데. 있잖아, 손녀 넷 중에 아빠를 제일 많이 닮아 나를 대놓고 편애하는 건 좀 불편했는데, 시장에서 장사하는 거, 실은 좀 창피했는데, 과자선물세트 하나씩 못 고르게 할 때는 할머니 원망했는데…. 나 할머니랑 너무 많이 닮았어. 완전 미니 천금옥이야.
할머니가 하늘로 가기 며칠 전 의식이 혼미한 상황에서, 나에게 마지막으로 해줬던 말 기억 나? “우째 이렇게 예쁜 게 다 있노?” 였어. 할머니가 그렇게 키워줘 놓고는. 나 예쁘게 키워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예쁘게, 곧고 바르게, 좋은 거는 다 하면서 잘 살아낼게.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