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람 그리고 연대

10년 뒤에도 내가 붙잡고 싶은 삶의 풍경

by 성장썰


2035년 9월 14일의 하루

아침에 눈을 뜬다. 경기도의 집, 아직은 수도권과 가까운 이 생활권이 마음에 든다. 창문을 열자 가을 냄새가 묻은 바람이 들어온다.

부엌에서 물 한 잔에 양배추즙과 유산균을 챙겨 먹고, 커피 포트로 따뜻한 물을 끓인다. 오늘은 홍차를 우리는 날이다. 김이 오르는 찻잔을 들고 서재로 들어가, 모닝 재즈를 틀어놓는다. 음악은 잔잔하지만 어깨가 살짝 들썩일 만큼 경쾌하다. 차를 홀짝이며 아침 명상을 하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미라클모닝 노트를 펴고 오늘의 목표를 적는다.

보온병에 홍차를 담아 들고, 양말만 대충 꿰어 신고 집 앞 하천으로 나선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강도를 높여 뒷산 언덕 코스를 돌았다. 바람이 시원하다. 삼십 분쯤 걸으니 땀이 나고, 돌아오니 벌써 8시. 샤워로 개운하게 씻어낸 뒤 미숫가루 한 잔으로 속을 채우고 출근길에 오른다.

출근길엔 늘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 듣는다. 가사에 맞춰 흥얼거리다 보면 길이 금세 줄어든다. 사무실에 10시 전 도착해 동료들과 가볍게 “하이하이~” 인사를 나누고, 오늘의 업무를 정리한다.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오늘은 또 뭘 먹을까. 재택 하지 않는 날엔 동료들과 식사하며 시사, 경제 이야기를 귀동냥하는 게 제법 재미있다.

오후에도 몰입하다 보니 금세 퇴근 시간이다. 정시에 맞춰 6시에 사무실을 나와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로 향한다. 내게는 작은 아지트 같은 곳이다. 손님이 오기 전, 늘 앉는 구석 자리에 자리 잡고 책을 읽고 필사를 한다. 노트북을 켜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손님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면, 나는 노트북을 덮고 일손을 돕는다. 가게가 북적이는 기운을 즐기다가 9시쯤 집으로 향한다. 다음 주 북토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러닝머신 위에서 10분쯤 달리며 몸을 풀고, 북토크 준비에 몰입한다. 작년에 낸 책을 계기로 다른 작가들과 공동 북토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단독 강연은 성에 차지 않는다. 이미 책에 담았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형식이 나는 지루하다. 묻고 답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토크쇼 방식이 훨씬 즐겁다.

특히 이번에는 오래 알고 지낸 김하나 작가와 함께한다. 40대를 주제로 한 책을 펴낸 그녀와 나는 집필 모임에서 처음 만나 서로의 글에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집필의 인고 과정을 함께 견뎌온 동지다.

김하나 작가처럼 자기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을 보면 반갑다. 꿈과 희망이 옅어지는 시대에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 안의 열망이 다시금 불붙는다.

지난 10년 동안 성실히 살아왔다. 충실히 지낸 덕에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도 늘어났다. 세 권의 책을 낸 작가, 퍼실리테이터, 라이프 코치. 주말이면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짝꿍과 전국을 다니며 산문을 쌓았고, 그 덕에 곳곳에 나만의 힐링 스팟이 생겼다.

분기마다 애정하는 사람들과 모여 웃고 울며 서로를 응원하는 시간도 소중히 지킨다. 평소엔 친절하고 다정하게 살고 싶다. 존경할 만한 어른과 이웃이 곁에 있기에, 그것은 노력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다.

물론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다. 억울한 일, 슬픈 일은 끝없이 이어진다. 예전 같으면 홀로 화내다 울음을 삼켰겠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으려 한다. 함께 화내고, 함께 울며, 문제를 드러내고 바꾸려 움직인다.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곁에서 함께해 주는 친구들 덕분이다.

앞으로도 슬픔과 억울함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내 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삶에 닥칠 것이다. 그럴 때 외면하지 않고, 마주한 이와 함께 울고 분노하며, 끝까지 곁을 지킬 수 있는 체력과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늙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본 글은 서늘한여름밤 작가님의 「10년간의 인생 디자인 하는 방법」​을 보고 영감을 받아, 나의 10년 후 하루를 구체적으로 그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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