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를 잃고 난 후
유가족 모임에 갔다.
둥그렇게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제가 죽으면요… 팔다리 하나가 없어지는 느낌이에요.”
그는 형제가 세상을 떠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잠깐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숙였다.
“삶이… 이전이랑 이후로 완전히 갈라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십 년을 살면서 나는 내 삶이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큰 굴곡도 없고,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도 없는 평탄한 삶이라고 여겼다.
오빠의 죽음은
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의 목록에 단 한 번도 올라본 적이 없는 사건이었다.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의심해 본 적도 없고,
가능성으로조차 떠올려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일어났다.
오빠가 떠난 뒤 몇 달 동안
나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살았다.
길을 걷다가 문득
앞에서 걸어가는 어떤 남자의 뒷모습이
오빠처럼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잠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시 오빠가 서 있을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동안(혹은 지금까지도)
오빠가 정말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저 잠깐 여행을 간 것 같았다.
어딘가 멀리 떠난 것 같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스스로에게 말해야 했다.
죽었다고.
정말 죽은 거라고.
그 감각이 너무 이상했다.
이대로 두면 내가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정신줄을 붙잡았다.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회사에 출근했고
평소처럼 일하려고 애썼다.
내가 버텨야
엄마와 아빠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텼다.
나는 오빠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내 삶에서 그렇게 큰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잃고 나서야 그가 얼마나
나에게 큰 존재였는지를 깨달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오빠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내 유년 시절을 가장 많이 함께 보낸 사람이기도 했다.
포켓몬을 보던 기억,
카드캡터 체리를 좋아하던 시간,
혼자였다면 관심도 없었을
원피스나 강철의 연금술사 만화를 보게 된 것도
모두 오빠 때문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고
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 삶에서 꽤 큰 존재였다.
그걸 몰랐다.
나이가 들면서
각자의 삶을 살게 되었고
연락은 점점 뜸해졌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저 애정 어린 사람이었다.
그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는
잃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떠나고 나서야만 알게 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오빠가 떠난 뒤
나는 또 다른 감각을 알게 되었다.
어버이날이 가까워지던 날이었다.
문득 생각이 났다.
오빠는 어버이날이면
엄마 사무실로 꽃다발과 케이크를 보내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지만 이제는 내가 챙긴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못하니까.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부모님을 함께 떠받치던
다른 한쪽 팔이 사라진 느낌.
형제를 잃는다는 말이
왜 팔다리를 잃는 것 같다는지
그제야 조금 이해됐다.
.
삶은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태풍처럼, 폭풍우처럼
어떤 날에는 거대한 파도가
삶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
오빠의 죽음은
내게 대지진 같은 재난이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내 삶에 하나의 믿음이 생겼다.
생각보다 나는
버틸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이다.
.
또 하나 달라진 점,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바라보는 태도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쉽게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픔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오만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이해한다고 말하기보다
조금 더 조용히 듣는다.
조금 더 겸손한 마음으로
조금 더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바라본다.
삶이 언제 다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미래의 나는
또 나름의 방법으로
버텨내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