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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Aug 21. 2024

혼자라서 좋은 시간.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는 나홀로 2박3일 - 둘째날 이야기 (5)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발코니에 앉아 바다멍...을 했다. 같은 바다이지만 어제와 오늘의 색이 달라보이는 것 같다. 사실 비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라 한번쯤 세차게 비가 내려도 좋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2박3일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나, 날씨요정이었나봐. 

한시간정도 쉬면서 주변 식당을 검색했다. 마지막 저녁식사니까 만찬을 먹어주겠어!라고 야심차게 다짐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음식점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사실 '혼자 먹기 좋은 식당'을 찾다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무엇보다 괜찮아보이는 몇몇 식당은 휴일이었다. 주말까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월요일에 쉬어야하지. 나역시 그렇게 살고 있고... 그러니 그들의 휴일을 탓하지는 않기로 한다. 

일부러 호텔에서 좀 떨어진, 시내 중심가의 식당 두곳을 찜하고 나가보기로 했다. 이 바닷가 도시의 시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해변에서 20분정도 걸어나가면 금새 시내 중심가였다. 시장과 마트도 보였고, 있을 것은 다 있어보이는 작은 도시였다. 무엇보다 시내 중심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있었다. 몇걸음만 걸어나가면 바다가 있고, 몇걸음 걸으면 공원이 있고... 여기는 참. 평화로운 도시로구나. 

찜해두었던 두곳의 식당 중 첫번째 집은 일식집이었다. 도착해서 창문너머로 가게를 들여다보니 손님이 아무도 없고 주방장은 직원들과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퀴년에서 맛볼 수 있는 제대로 된 정통 일식집! '이라는 구글 리뷰에 속았구나.... 입구에서 서성이다 문도 열지 않고 조용히 뒷걸음쳐 나왔다. 


그리고 두번째 집으로 갔다. 시내를 빙 둘러 한바퀴 돌아서 간 덕분에 한시간 가까이 걸어서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먹기로 한다. 겉모습은 피자헛처럼 생긴 캐주얼한 분위기인데, 피자와 스테이크를 파는 집이었다. 혼자 먹방을 찍으러 간 것은 아니니 둘 중 하나를 골라야했다. 오랜 고민 끝에 스테이크를 신중하게 골랐다. 가격으로 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아도 될 퀄리티라 조금 아쉬웠다. 나의 의미있는 여행의 마지막 저녁만찬인데. 마음같아서는 근사한데서 막 우아떨며 와인도 따고 허세부리고 싶었는데... 현실은 피자헛 스타일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시끌시끌한 가족들, 젊은 연인들의 수다를 견디며 홀로 고요히 앉아 고기를 썰어야 하다니.

그런데 반전이 있다. 오른쪽의 저 빵. 잊을 수 없을만큼 맛있다. 쫄깃쫄깃 폭신폭신 고소하다. 저런 빵 파는 곳 있음 사놓고 냉동실에 재워놓고 싶을만큼... 그리고 스테이크는 평범했지만 나쁘지는 않았고, 소스도 훌륭했다. 많이 걸어서였을까? 깨끗하게 접시를 비우고 기분좋게 나왔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저 빵이 너무 그립다. 


저녁을 먹고, 다시 해안가로 가는 길로 발길을 돌렸다. 저 멀리 괜찮아 보이는 카페도 보이고, 저기 어딘가에는 그럴싸한 맥주집도 보인다. 아마 이 도시에 다시 오게된다면, 다음엔 갈 수 있을까? 


어제 도착해서 낯설고 어색하고 불안했던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제는 내일 떠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조금 아쉬워진다. 


한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하루면 충분하구나. '사랑에 빠진다'라는 말을 할 만큼 대단히 특별하고, 대단히 아름다운 것도 아닌데 나는 그냥 이곳을 좋아하기로 결정했다. 나에게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으니까. 


아마 나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왔다면, 아무리 나에게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곳을 이렇게 즐길 수 있었을까? 가깝고 좋은 사람이라면 그만큼 그 대상을 배려하며 일정과 기분을 살폈을테고,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는 기대를 하느라 살피며 시간을 보냈겠지. 같이 즐겁기 위해서 배려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며 조율했을거고... 물론 여행이란 결국엔 좋은 것을 남기니까 그또한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되었겠지만, 그런 노력자체가 필요없는 혼자만의 시간이라서 너무나 좋았다.


해변투어를 가서도 오고싶을때 호텔로 돌아오고, 별일없이 바다를 구경하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싸구려 스테이크를 먹으면서도 혼자 그럭저럭 만족하고, 마음내키는대로 발길닿는대로 바다를 걷고 있는 시간이 유난스레 특별하게 느껴졌다. 


관계와 사람에게서 떨어져 살수 없는 일상을 살다 혼자 떨어져나와 나만 생각하고, 내 안의 소리에만 집중하는 일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지. 얼마나 신선한 경험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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