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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Aug 20. 2024

키코비치에서 한국아이스크림, 한국책, 한국말을 만났다.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는 나홀로 2박3일 - 둘째날 이야기 (4)

한적하고 그림같은 키코비치의 해안가 끝에서, 공주님들을 만났다. 

베트남의 젊은 아가씨들은 인생샷찍기에 최선을 다한다. 귀엽기도 하고 저렇게나 열심인 그들의 결과물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서로서로 열심히 사진찍어주는 공주님들의 풍경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다 몸을 돌려 다시 모래사장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넓은 해변은 아니어서 한바퀴를 다 돌아도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배를 타러 선착장에 다시 가야하는 3시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근처에 음료나 음식을 팔 것 같은 바가 몇군데 보이기는 했는데 사람이 없어서 장사를 하는지 안하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음료 냉장고가 있고, 직원이 한가롭게 앉아있는 바에 들어가 메뉴를 달라고 했더니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역시나 외국인에게 낯설어하는 베트남 직원이라, 나의 베트남어도 영어도 잘 통하지 않았다. 사진으로 감자튀김 사진을 보여주니 해맑게 웃으며 오케이오케이! 하고 맥주와 감자를 가져다주었다. 

아, 그런데 이 감자튀김 왜이리 맛있는건지.  한참을 걸은 뒤라 맥주는 또 얼마나... 말해뭐해.

이번 여행에 들고간 황정은 작가의 '일기'를 바닷가에 앉아 마지막 부분을 다 읽었다. 작가님의 아픈 자기고백이 담긴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은 마음이 많이 아프고, 어둡고, 처연해진다.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를 참 좋아하는데, 그 소설에 서려있던 태생적인 외로움과 공허감의 깊이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 예쁜 바닷가에서, 이렇게나 고요하고 호젓한 기분으로 읽는 책은 아마 오래 기억에 남겠지. 만약 다른 곳이었다면 이 책의 여운이 조금 어둡게만 남아 있지 않았을까. 얇고 가벼운 책이라 들고 왔는데, 이곳에서 이 책의 마지막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느정도 시간이 되어 선착장에서 나를 기다리겠다던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30분을 더 기다리라고 한다. 이럴줄 알았음 바에서 더 시간을 보내다 오는건데! 억울한 마음과 함께... '나를 데릴러 오기는 오는걸까?'라는 불안감이 2% 정도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 마음을 가라앉히려 해변을 또 이리저리 걸었다. 


한쪽 구석에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었다. 그런데 냉장고를 들여다보니, 한국 아이스크림으로 꽉 차있다. 베트남의 시골 바닷가 마을에 한국 아이스크림이라니! 거기다 나의 최애 아이스크림이 있다. 이건... 기념으로라도 안먹을 수가 없잖아. 하며 (맥주마시고 배도 불렀지만) 하나를 사서 기쁘게 뜯었다. 


결국 한시간 정도를 더 기다렸다 배를 탔다. 다행히 돌아가는 배에는 나를 제외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건다. 


"언니~" 


내가 잘못들었나? 했다. 


베트남 대가족이 배에 함께 탔는데, 그 중 아이들 엄마로 보이는 베트남여성분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이었다. 시골 바닷가에서 만난 한국사람을 보고 반가와 말을 걸어준 것이었고, 나머지 가족들의 시선은 모두 나에게 향해 있었다. 이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 하. 하. 


"언니, 한국 사람이예요?"

"언니, 혼자예요?"

"언니, 가족은 어디있어요?"

"언니, 어디서 왔어요?"

"언니. 내가 사진 찍어줄까요?"


너무 순수하고 해맑은 얼굴이고 호기심과 친절로 가득한 표정이라 밉지는 않은데 혼자서 이틀을 지내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한국어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나의 상황, 나의 상태가 진짜 너무나 신기하고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흔들리는 배 위에서 열정적으로 내 사진을 찍어주던 그녀는 다음번 바닷가에서 헤어졌다. 그 가족들은 다른 해변에 가서 스노우쿨링과 식사를 하는 투어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나도 같은 상품인지 아닌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나는 이대로 투어는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더 근사한 절경을 본다고 해도 그냥 여기에서 멈추어도 충분하다는 마음이었고, 조금 피곤하기도 했다. 시원한 호텔방이 그리웠다. 한국어를 잘 하는 그녀덕분에 다행히 내 말이 전달이 된 것 같았다. 

가족여행팀과 같이 배를 타기도 했고, 한국어가 통하는 사람도 있어서인지 올때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마음이 되어 돌아가는 길 바다 풍경은 편한 마음으로 감상을 했다. 


베트남 가족들과 헤어져 택시기사를 만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 혼자 다른 트럭에 태워져서 털털거리며 길을 가는데 안전벨트도, 창문도 없는 고물트럭이었고 옆자리에 앉으신 기사아저씨는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아저씨였다. 역시 나는 참으로 무모하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사람들에 대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나를 기다려준 택시기사를 다시 만나 차를 탔더니 좋았는지 묻는다. 

'응, 너무 좋았어. 너무 아름다웠어. 고마워.' 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그걸로 만족이 되었는지 갈때처럼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고 조용히 숙소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런데, '목마르면 물마실래?' 라고 건네주시는 생수를... 받아마시진 않았다. 

(여지껏 하라는데로 다 해놓고선 마지막에 경계하는 건 뭐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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