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는 나홀로 2박3일 - 둘째날 이야기 (2)
아침 산책을 마치고 들어와 씻고나서 바로 조식을 먹으러 갔다. 원래 아침을 안먹는 사람이지만, 촌티나게도 여행지 호텔에서 조식은 필수 옵션이다. 호텔을 고를 때 리뷰에서 조식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있으면 패스하는 편. 사실 특별한 건 없어도 계란 요리를 해주고, (베트남에서는) 쌀국수가 있으면 좋고, 빵과 버터가 다양하게 있고, 커피가 괜찮은 정도면 충분하다.
몇년 전 아이와 둘이서 유럽여행을 갔을 때, 로마의 소박한 에어비엔비에서 묵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집이었는데 아침이면 크로와상이 포함된 두어가지 종류의 빵과 버터, 작은 쨈 두어개, 그리고 쥬스가 전부인 조식을 제공해주셨다. 그렇게 조식을 주고 침구와 방을 깨끗이 청소해주기만 하는 작은 숙소였는데 그 할아버지의 삶이 꽤 단순하면서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었다. 근사한 호텔의 조식부페가 아니었음에도 나무 쟁반에 체크무늬 냅킨을 깔고 흰접시에 담겨나와 침대 위에 올려두고 먹었던 소박한 조식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나와 함께 여행을 갔던 나의 소녀는 열두살 정도였었는데, 매일 아침 그 빵 한쪽에 감동하며 먹고 남은 빵과 쨈을 작은 종이상자에 넣고 낮에 관광하다 배고플때 공원 벤치에 앉아 꺼내먹고는 했었다. 아마도 그 기억때문에 그 할아버지 숙소의 조식이 오래 생각나는 거겠지. 생각해보면 결국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기억에 남는 건, 멋지고 근사한 식당의 퀄리티가 아니라, 그 추억 속에서 무엇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행복해했는지의 감정이 아닐까.
조식 부페 식당은 41층이었는데 식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해변 근처 도시 풍경이 근사해서 내려다보니 성당 지붕이 보였다. 할일을 딱히 정해놓고 온 것도 아니고, 동네구경도 할 겸 성당을 목적지로 정하고 바깥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젯밤과 새벽에는 그렇게나 북적이던 해안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적막해보이기까지 했는데. 이곳의 뜨거운 날씨탓이었다. 정말 햇볕에 모든 것이 녹아내릴듯 무더웠고, 모래사장은 바삭바삭하게 달구어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파란 하늘, 눈부시게 쨍한 날씨 아래의 바다는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근사했다.
베트남의 성당은 대부분 예쁘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겪은 탓에 유럽 양식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퀴년의 이 성당은 비교적 신식풍(?)이었는데 밝고 정갈한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다.
아쉬웠던 건 아마 월요일이어서 그랬겠지만 성전 문이 닫혀있어서 안을 보지는 못했다. 대신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걸어가는 동안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성모상 앞에서 묵주기도 마지막을 바칠 수 있어서 좋았다. 성모 동산 안에 (아마도) 성탄 구유를 만들 때 쓰일 것 같은 성가정 상이 한구석에 눕혀져 있었는데, 좀 묘하게 마음이 끌려 사진을 찍어보았다.
한동안, 기도를 잘 하지 못했다.
사람은, 나를 받아줄 것 같은 사람에게 떼를 쓰고, 요구하기 마련이다.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마음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신앙이란 미움을 걷어내고 용서와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는 사람이 되는 길인데, 그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나여서, 나는 나의 신에게 떼를 쓸 수가 없었다. 이해해달라고 조를 수가 없었다. 자꾸만 멀어지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계시는구나, 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직은 잘 모른다. 모든 건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도. 하지만 내 식대로의 이 엉터리같은 믿음일지라도 기도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면 붙잡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다시.. 기도를 하고 있다. 그분 곁을 서성이고 있다.
성당을 나와 카페를 찾아나섰다. 아침 조식을 먹으며 내내 카페검색을 했다. 특별한 일정은 없지만 여행와서 많이 읽고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은 카페를 찾으면, 그 속에 콕 틀어박혀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싶다는 다짐을 하고 온 참이었다. 그렇게만 지내다 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니... 에어컨이 갖추어진 카페가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괜찮은 카페가 없으면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구글 리뷰가 나쁘지 않았던 카페 한 곳이 숙소와 가깝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간해서는 아이스커피는 잘 시키지 않는데, 아침을 많이 먹기도 했고 꽤 많이 걸어 땀이 줄줄 쏟아지는 찰나여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가격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나무로 된 탁자, 나무로 된 인테리어면 대부분 좋아하는지라, 마음이 편안했다. 낯선 동네의 처음 온 카페인 것 같지 않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낯선 곳을 찾아 여행을 왔으면서도 익숙한 분위기를 보면 반갑고 편안해지는 아이러니라니! 이것 또한 여행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