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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Aug 12. 2024

초록색 모자가 데려온 바닷가.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는 나홀로 2박3일 - 둘째날 이야기 (1)

지난밤 해안가에서 맥주를 한잔 하고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서 맥주를 두 캔을 샀다. 밤에는 방에 들어와 베란다에 앉아 밤바다와 야경을 보며 감자칩을 한봉지 뜯어 맥주를 마셨다. 별 할일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은 조금 어색했는데, 혼자 있어서 어색하거나 외로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호젓하고 고요한 상태가 너무나 내 안을 충만하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잘 노는 아이였다. 


위로 세 살, 여섯 살 터울인 언니와 오빠는 나와 놀아주기에는 이미 사회적 관계가 형성이 된 상태였다. 학교에서는 말이 없는 아이였다. 친했던 친구가 있었나? 잘 모르겠다. 한마디도 안하고 학교에서 그림자처럼 있었던 것 같은데, 도시락을 싸고 다니던 시절부터는 누구와 점심을 먹었을까? 혼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혼자 방에서 인형 놀이를 하고, 혼자 동화책을 끝없이 읽고, 혼자 동네를 걸어다녔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방학 때면 혼자 집근처 도서관에 가서 밥때가 될 때까지 책을 읽다가 집으로 왔다. 시장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고, 사람이 없는 텅 빈 학교 운동장에 하릴없이 들어가 거닐곤 했다. 예쁜 돌이 있으면 주머니에 넣어 들고와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거나 벽에 붙여놓기도 했었는데... 나이들어 만난 친구가 그 이야기를 듣더니 '혼자 돌줏으러 다닌 어린이였네.'라며 놀리곤 했다. 내가 생각해도 좀 평범하진 않았네.. 싶은데, 한편으로는 우리엄마는 나 참 쉽게 키웠겠다.. 싶기도 하고, 혼자 돌아다니는 여자 아이를 떠올리면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사건사고를 연관지을 수도 있는데 참 평화로운 시절을 살았구나, 하는 마음도 든다. 


그때부터,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혼자 고요히 다니며 마음속으로는 수많은 말을 했던 것 같다. 생각할 때 내 마음 속에서 들리는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호텔방 커튼을 일부러 열어놓고 잠을 잤다. 해뜨는 시간즈음의 하늘이 보고싶어서였다. 전날 잠을 잘 못자기도 했고, 많이 걸어서인지 오랫만에 밤새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잤는데, 무언가 공기랄까 분위기가 달라지는 느낌에 눈을 떴더니, 한쪽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5시 10분즈음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닐까? 조금 망설이다 잠이 다시 올 것 같지는 않아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머리를 빗고,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

이번 여행은 모자 하나로부터 시작되었다. 



청소용품을 사러 갔던 매장에서, 햇빛을 잘 가려줄 것 같은 초록색 모자를 홀린듯 사왔는데, 사실 동네산책할 때 쓰기에는 과하여 방에 걸어놓고 매일 보고 있었다. 볼 때마다 저 모자를 쓰고 어디로 갈까? 생각을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매일 모자를 보고, 매일 여행을 생각하고, 저 모자를 쓰고 가는 여행은 혼자인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뻗어나가서... 그렇게 결국 지르게 되었으니, 모자때문에 온 여행이 맞을지도 모른다. 


새벽 다섯시반의 바닷가는 적막하고 고요해서 나 혼자 호젓하게 새벽바람과, 파도소리를 즐겼다............

..............

라고 쓰고 싶지만, 


현실은. 


세상에, 이건 마치 싸이흠뻑쇼를 보러 온 인파에 버금가는 사람들이 바닷가에 가득... 깔려있었다. 


내가 시간을 잘못 알았나? 생각하며 시계를 다시 확인할만큼.


자세히보니 대부분 나이드신 분들이 많았고, 관광객이 아니라 이 지역에 사는 분들일 거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왔다. 매일 새벽, 한강변을 달리는 서울 사람들처럼. 호수공원을 산책하는 일산 사람들처럼, 이분들은 매일 새벽 해뜨기 전, 바닷가에 와서 뛰고, 걷고, 바다수영을 하며 건강을 챙기는 분들인 것이다. 사실 나도 만약 이 동네에 산다면 그렇겠지? 


전날 밤바다보다도 훨씬 더 왁자지껄했고, 수영하고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바닷가는 소란스럽고 활기가 넘쳤다. 그래도 바다는 어젯밤에 본 것보다 더 예쁘고, 근사했다.

낯선 곳에 여행을 가면 늘 하는 생각이 있다. 나는 이곳을 여행지로 와서 온통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인데, 날 때부터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이 풍경과 환경은 어떤 의미일까? 


매일 아침 수평선 너머로 해가 뜨고, 언제나 어딜가든 파도소리가 들리고, 아침이면 바다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그런 삶은, 그 사람의 마음과 머릿속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놓을까? 저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와, 매일 느끼는 감정은 도시에 사는 사람의 마음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저 사람들에게도 평범한 일상의 날들, 삶의 고단함과 어려움, 오늘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커다란 바다 앞에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뜨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은 매우 건강하고 행복해보였다. 하루의 시작이 매일 이렇다면,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하는건, 이방인인 나의 시선일 뿐일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닷가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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