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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Aug 10. 2024

너무 좋아서 어색한 이 기분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는 나 홀로 2박 3일 - 첫째 날 이야기 (4)

퀴년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해질녘이었고,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주변은 깜깜해져있었다. 한국 사람이 잘 모르는 조용한 휴양지를 생각하고 선택한 곳이었지만, 현지 사람들도 모르는 건 아니지!라는 깨달음이 온건, 호텔 리셉션에서부터였다. 이곳도 여름방학시즌이고, 휴가철이어서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꽤 많았고 시끌시끌했다. 우아하고 호젓한 나홀로여행의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짐만 대충 정리하고 더 늦기 전에 주변을 탐색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호텔에서 바닷가는 길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였고, 퀴년의 바닷가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길고 넓었다. 다낭이나 나트랑의 바닷가도 만만치않게 넓고 길지만 또다른 느낌으로 길고 트여있어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모래는 곱고 부드러웠고, 모래사장은 평평해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기에 더없이 좋았다. 산책을 할 때면 BGM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라 이어폰이 필수인데, 파도소리가 너무 좋아 음악없이 고요히 걷기만 했다.



해안가가 너무 크고 넓어 사람이 있어도 전혀 북적이지 않았다. 강아지도, 아이들도 참 많았는데 자유롭게 다니며 아이들은 바닷게 같은 것들을 잡고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유난히 '할머니-아이들-강아지'의 조합을 참 많이 본 것 같다. 한쪽으로 죽 걷다 다시 반대방향으로 죽 걸으니 거의 만보정도를 금새 걸었다. 


월요일 하루만 쉬는 사람이고, 그 월요일도 일정이 없는 날은 드물어 주7일 노동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며 살고 있다. 공식적인 직업은 두개이고, 그밖에 책모임같은 것들을 이끌고, 무언가를 쓰고 읽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니 언제나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 길들여져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모두를 치열하고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또 아니고...  매일 계획하고 마음먹은 일들 중 60퍼센트정도만 채워가며 근근히 살아내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 편이다. 그 나머지 40퍼센트의 부족함이 늘 마음에 걸리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라는 생각을 반복하는 내가 가끔은 열등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의 눈에 나는 멀티태스킹이 잘 되는, 참 많은 일을 하는 바쁜 사람으로 보여질지도 모르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고 늘 숙제를 다하지 못하고 잠에 드는 마음에 시달리곤 했다.


그런 내가, 하릴없이 가방에는 지갑과 열쇠만 넣어놓고 한손에는 신발을 들고 모래사장을 맨발로 한시간 가까이 걷고 있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토끼굴로 떨어진 앨리스의 기분이 되어 조금 어리둥절한 상태로 파도소리를 들었다. 어딘가에 중요한 것을 빼놓고 온 기분, 무언가 어색한 기분이 있어서 완벽하게 즐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내가 있던 도시, 내 일터와 내 집, 내가 두고온 일들로부터 아직은 정신적으로 완전히 분리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좋다, 참 좋다! 바닷바람도 좋고 파도소리도 좋고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모래의 느낌도 좋고. 너무 좋다! 그런데... 머릿속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두고 온 많은 것들, 그 중에서도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주었던 일들과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엔 머리를 흔들어 다 지우고 싶었지만, 잠시 후에는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 이 곳에서는 그냥 떠오르는 건 떠오르는대로 내버려두면 어떨까? 



일상생활을 할 때에는 불편한 일들을 피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밀어내어야 내 일과, 삶에 집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모되는 정신적 에너지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애써 누르지 말자. 떠오르는 생각은 생각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감정들은 그대로 느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바닷가를 걷다보니 일렁이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한시간정도를 걷고, 걸으면서 괜찮은 곳인지 아닌지 두번 정도 왔다갔다하며 탐색을 한 해변의 Bar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도 살짝 긴장하고 눈치보이는데, 사실 종업원들도 이 외국아줌마를 어색해하는게 보인다. 너도 당황스럽지? 나도 당황스럽단다..의 마음으로 맥주를 시켰다. 



파도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모래사장 위에서, 바다를 눈앞에 두고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지금 이 순간, 이 상태만큼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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