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미들네임(Middle name)

헬로, 앤디 1

by SY전서주
15 통계 수학.jpg





혜진이 공항 폐백실로 이어진 하얀 대리석 계단을 서둘러 내려갔다. 그녀는 짙은 남색 근무복을 입고 있었다. 들고 있던 휴대폰은 주머니 안에 넣었다. 긴 계단 맨 아래에 다다른 그녀가 맞은편에 있던 폐백실을 확인했다. 유리 벽 안으로 북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머, 그새 많아졌네.’


혜진이 서둘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리자 일하던 직원이 혜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셨어요?”

“네. 죄송해요. 사람이 많네요.”

“아니에요.”


직원은 한 외국인 여성의 연분홍 저고리에 달린 옷고름을 매어 주고 있었다. 직원을 흐뭇이 바라보던 외국인 여성이 치마 자락을 살포시 만졌다.


[“부드러워요.”]


직원은 그녀를 향해 미소로 응답했다. 그 외국인은 키가 그리 크지 않은 중년의 백인 여성이었다. 갈색 뿔테안경을 쓴 그녀의 두 볼이 연분홍색으로 붉었다. 그녀가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휴...”]

[“더우세요?”]

[“네. 조금요. 오늘 많이 걸었어요.”]


혜진이 듣고 리모컨을 찾아 에어컨을 틀었다. 외국인 여성은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탈의실에서 한 외국인 남자가 나왔다. 그는 옅은 하늘색의 남자 한복을 입고 있었다. 걸음마다 배자 자락을 휘날리며 그가 멋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를 보고 방긋 웃던 외국인 여성이 자신의 머리 위에 있던 장식을 가리켰다.


[“나 어때?”]


짧게 자른 그녀의 금발 머리 위에는 초록 잎사귀를 두른 노란색의 탐스러운 꽃장식이 있었다. 주로 아이들이 하는 머리 장식이었지만, 짧은 머리 탓에 다른 장식은 할 수 없었다. 그녀 또한 개의치 않았다.


[“예뻐. 좋아.”]


서로 묻고 답하며 묻는 그들은 잔뜩 신이 나 보였다. 혜진이 남자 외국인의 한복 옷고름을 살폈다. 스냅 단추를 꼼꼼히 맞춘 후, 겉에 입은 미색 배자의 어깨선을 다듬고 구겨진 저고리 소매를 정리해 주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 직원이 작은 목소리로 혜진에게 물었다.


“통화는 잘하셨어요?”

“네.”

“… 괜찮으신 거죠? 별일 없는 거죠?”

“…네?”

“급한 전화 있다고 나가시길래 혹시 무슨 일 있나 해서…”

“아, 그게 아니라… 친구하고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일정이 바뀌어서 갑자기 뭘 알려달라고 해서요.”

“여행! 전 또 아드님 일로 바쁘신 줄 알고.”

“아…”

“여행 가면 좋죠. 하긴, 한번 다녀오시면 딱 좋을 시기네요.”

“… 그런가요?”


혜진이 쑥스러운 듯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자기야, 혹시 다른 색은 어때요?”]


여자 외국인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외국인이 대답했다.


[“어? 왜?”]

[“우리 함께 비슷한 색을 입으면 좋지 않을까?”]


여성은 자신의 연분홍 치마와 같은 색의 배자를 남자가 입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오, 허니… 절대 안 돼.”]

[“왜 안돼?”]

[“난 분홍은 안 입어.”]

[“뭐라고?”]


여자가 짓궂은 표정으로 어이없어하자, 남자가 웃었다.


[“다 되었습니다. 거울을 보시겠어요?”]


둘은 전신 거울 앞에 나란히 섰다. 예쁜 장식, 고운 색의 옷, 펄럭이는 소매와 치맛자락을 보며 즐거워하던 그들은 서서히 거울 속에서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말없이 손을 잡았다.


[“사진을 찍어드릴게요.”]


커플은 마루 끝에 서 있던 병풍 앞으로 걸어가 자세를 잡았다. 직원은 먼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혜진이 그 사진을 받아 책상 앞 작은 메모판에 붙였다. 사진이 잘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곳이었다. 다음엔 그들의 개인 휴대폰으로도 사진을 찍어주었다. 귀여운 입맞춤을 나누는 마지막 사진엔 기다리던 이들도 웃으며 손뼉을 쳤다. 커플이 다시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직원은 다음 관광객의 옷매무새를 정돈해 주었다. 혜진은 시원한 녹차 음료를 몇 병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마실 수 있게 했다. 음료병은 마치 옥빛 찻잔인 듯 모양이 예뻤다.


[“준비가 다 되셨으니, 사진을 찍어드릴게요.”]


직원이 말하자 색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마루 위에 자리를 잡았다. 혜진은 앉아 있던 외국인의 마루 위에 펼쳐진 한복 치맛자락을 둥글게 정리해 준 후 옆에 널브러져 있던 다른 의상들을 재빨리 치웠다. 기다리고 있던 외국인 관광객이 물었다.


[“저도 헤어밴드를 고를 수 있나요?”]

[“물론이죠. 잠시만요.”]


자개장 서랍에서 색색의 머리띠를 꺼내 관광객에게 보여주며, 혜진은 기다리는 관광객이 얼마나 더 있는지 확인했다.


[“이 사진 다 나왔어요. 가져가도 되지요?”]


옷을 갈아입고 갈 준비를 마친 이들은 메모판에 있던 본인의 사진을 챙겼다.


[“네. 그럼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케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외국인 여성이 갑자기 혜진에게 걸어와 그녀를 꼬옥 안았다.


[“고마워요.”]

“아…네… 하하하.”

[“영원히 간직할게요. 사랑해요. 정말 고마워요.”]

[“천만에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폐백실에서 나간 그들이 유리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혜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똑같았다. 나비처럼 예쁘고, 한복처럼 고왔다.


‘누가… 있네?’


유리창 밖으로 한 외국인 소녀가 보였다. 계단 끝에 앉아 있던 소녀는 혜진과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았다.


‘… 여기 온 게 아닌가?’

“여사님, 사진 샘플 책 좀 갖다 주세요.”

“네.”


직원의 부름에 혜진이 마루로 올라가 책을 건넸다. 사진을 찍기 위해 줄 서 있던 외국인들이 책을 받아 들고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누구는 일어서서, 누구는 앉아서, 병풍 앞에서, 가구 앞에서, 차를 마시는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재미난 표정을 짓기도 하며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흘렀다. 북적거리던 폐백실은 조용해졌다. 마루 위엔 어지럽게 펼쳐진 고운 한복들만 남았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직원이 끄응 소리를 내며 마루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폐백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던 혜진은 아까 보았던 그 외국인 소녀를 또 발견했다. 그때보다 폐백실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걸어온 소녀는 직원이 나가는 것을 보고 폐백실 안을 살폈다. 혜진과 소녀가 눈이 마주쳤다. 혜진이 부러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제야 소녀는 걸어와 문을 빼꼼히 열었다.


[“끝났나요?”]

[“아니요. 들어오세요.”]


혜진이 친절히 말했다. 소녀가 머뭇거렸다.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 고맙습니다.”]


소녀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소녀는 문가에 서서 혜진을 보고만 있었다.


[“뭘 도와드릴까요?”]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싶어요.”]

[“네. 골라보세요.”]

[“아… 그런데… 저, 지금 말고요. 조금만 있다가요. 누가 올 건데, 같이 찍을 거예요. 여기서 잠시 기다려도 될까요?”]

[“그럼요.”]


소녀는 머뭇거리며 문 옆 작은 의자에 앉았다. 혜진은 자잘한 장신구를 바구니에 담아 정리했다. 폐백실 문이 열리고 직원이 급히 들어왔다. 직원이 의자에 앉아 있던 소녀를 보았다. 직원은 소녀에게 인사하고 혜진을 향해 걸어왔다.


“누가 왔네요?”

“네.”

“……”


왠지 모르게 불편한 표정이었다. 혜진이 입 모양으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에요.’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한 외국인 가족이 들어왔다. 아빠, 엄마 그리고 아장아장 걷는 예쁜 아가였다.


[“안녕하세요.”]

[“예약했습니다. 대니얼…”]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기 한복도 준비해 두었어요.”]

[“고맙습니다.”]

[“와, 얼른 가서 골라보자.”]


엄마의 밝은 목소리에 아기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마루 위로 올라갔다. 세 식구가 한복을 고르고, 단정히 차려입고, 병풍 앞에 서서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는 내내, 소녀는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복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이들 것이 훨씬 귀엽고 깜찍했다. 소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


엄마가 인형을 보고 미소 지은 것도 이래서일 것이다. 아이들 것은 원래 더 예쁘니까.


[‘내가 봐도 예쁜걸. 내가 봐도…’]


소녀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그녀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소피, 엄마 지금 가고 있어.]>


괜히 심술이 다시 난 소피가 서둘러 답을 적었다.


<[왜 이렇게 늦어?]>

<[중간에 착오가 있었어.]>

<[무슨 착오?]>

<[버튼 호텔이 두 개였어.]>

<[뭐?]>

<[조쉬랑 통화하다가 내가 기사한테 설명을 잘못해서…]>


또륵


새로운 창이 열리고 다른 메시지가 떴다.


<[헤이, 소피. 지금 뭐 해? 당장 답장 줘.]>


레이였다. 소피가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들켰어.]>


소피의 갈색 눈동자가 커졌다. 레이의 메시지 위로 엄마의 메시지가 떴다.


<[소피, 미안해. 엄마가 금방 갈게.]>


소피가 서둘러 답장을 썼다.


<[엄마,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 여기 아시죠? 지도 링크 다시 보낼게요. 기다리고 있으니까 천천히 오시면 돼요. 사랑해요.]>


소피는 다시 레이와 대화하던 화면으로 돌아갔다.


<[빨리 컴퓨터 켜. 선생님이 지금 직접 확인하신대.]>

<[컴퓨터 없어. 폰이랑 패드만 있어.]>

<[거기 SIS 3.0 깔려 있어?]>

<[아니.]>


SIS 3.0은 소피가 다니는 싱가포르 국제 학교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 학교의 모든 수업 자료가 실려 있었다.


<[설치 안 해서 지금 못한다고 하면 안 될까?]>

<[말이 안 되잖아. 조금 전까지 너랑 대화하고 제출하는 거라고 했는데.]>

[“이런, 제…”]


말하고 깜짝 놀란 소피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쁜 말을 내뱉은 것을 누가 들었을까 걱정하며 그녀가 주변을 살폈다. 예쁜 한복을 입은 아가가 마루에 누워 놀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도 못 들은 것 같았다.


<[선생님이 메시지 보내실 거야. 통계 문제 직접 물어보신대.]>

<[미치겠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소피가 재빨리 메시지를 적었다.


<[혹시 나 한국 왔다고 말했어?]>

<[아니. 왜?]>

<[아니. 그냥.]>


소피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었다.


<[으악! 왔어.]>

<[행운을 빌어.]>


나를 도와줘야지 어딜 가냐고 레이에게 말할 틈도 없이, 소피는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네… 그럼요… 선생님도 휴일 잘 보내고 계신가요?”]


소피가 안절부절못하며 휴대폰을 들고 폐백실 밖으로 나갔다. 가족사진을 찍어주던 직원이 밖으로 나가는 소피를 보았다.


“그냥 가는 건가?”


직원이 중얼거렸다.


“왜요?”


쟁반에 녹차 음료를 더 가져온 혜진이 물었다.


“아니, 그냥 가는 건가 싶어서요.”

“글쎄요… 그러기엔 많이 기다린 것 같은데…”

“예약한 것도 아니고…”


직원이 건네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받으며 혜진이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먼저 가요.”

“네? 아, 아니…”

“무슨 일 있는가 보네. 먼저 가요. 내가 있는데 걱정 말고.”

“아휴, 아니에요. 매일 여사님께 다 맡기고...”

“좀 맡기면 어때. 괜찮아요.”

“……”


자신들끼리 즐겁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 가족을 보고 직원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말 안 해도 돼. 얼른 가요.”

“힝, 정말 감사해요.”


직원은 물건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혜진이 마루 위에서 사이좋게 놀던 외국인 가족에게 말했다.


[“여기 녹차가 있는데 원하시면 드셔보세요. 사진이 나오면 알려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바이, 해봐요.”]

[“바...”]


엄마가 아기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게 했다. 혜진도 폐백실 문밖에 서서 아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빠 품에 안긴 아기는 졸린 듯 눈을 비볐다. 세 식구가 대리석 계단을 올라갈 때까지 혜진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시 폐백실로 들어가려던 혜진은 아까 간 줄 알았던 그 소녀가 폐백실 바깥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소녀는 공책에서 막 찢어낸 듯한 종이 한 장을 바닥에 내려놓고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양손으로 붉은 머리카락을 연신 꼬아대던 소녀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혜진의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들어오실래요?”]

[“네? 아…네…”]


소녀가 종이를 챙겨 일어났다. 안으로 들어온 소녀는 들고 있던 종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철퍼덕 앉았다.


[“한복 고르실래요?”]

[“네? 아… 저는… 조금 전에 나간 가족들이 입었던 거, 그거 입을게요.”]

[“저거요?”]


그들이 벗어놓고 간 한복은 아직 마루 위에 그대로 있었다.


[“네, 저거요. 저거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혜진은 남은 한복을 정리해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혜진이 밖으로 나왔을 때도 소녀는 그 종이를 째려보고 있었다. 혜진은 다시 창고로 들어가 음료를 갖고 나왔다.


[“녹차 드시겠어요?”]


혜진이 음료를 탁자 위에 올렸다.


[“아, 고맙습니다. 병이 예쁘네요.”]


소녀가 녹차 병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혜진이 미소 지었다. 소녀가 녹차를 열어 한 모금 마셨다.


[“아, 시원하다. 아, 저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저희 엄마는 녹차를 안 드세요.”]

[“네.”]


혜진이 남은 녹차 한 병을 치우면서 테이블 위에 있던 종이를 보았다.


“……”


혜진이 소녀를 보고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네. 네, 맞아요. 내일 아침 비행기. 데리러 나오실 수 있어요?”]


택시에서 내린 모린이 하얀 대리석 계단을 내려가며 통화를 이어갔다.


[“아니, 거기 상황이 좀 복잡한 것 같아서요. 아빠는 어떠세요?”]

<[“걱정할 것 없어요. 외부엔 그런 소식이 나가는 중이지만, 여기선 다 해결되었어요.”]>


유달리 자신감 있는 조쉬의 목소리에 모린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에요.”]


계단을 내려온 모린이 정면에 있던 폐백실을 보았다.


[“조쉬, 저 이제 가야 해요. 내일 만나요.”]


전화를 끊고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있지? 근처에 있다고 했는데…’]


모린이 휴대폰으로 소피에게 전화를 걸며 폐백실로 걸어갔다. 그녀가 문을 열었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폐백실 어딘가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혹시…”]

[“엄마!”]


나무 마루 위, 조그만 탁자를 사이에 두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와 남색 근무복을 입은 아시아인 직원이 가깝게 앉아 있었다. 멀리에선 뒷모습만 보였기에, 모린은 연분홍 한복을 입은 사람이 소피인 줄 몰랐다.


[“소피?”]

[“엄마, 왔어요?”]

[“응.”]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린을 보고 인사했다. 모린도 직원에게 인사를 했다. 직원은 마루 끝, 병풍이 세워진 곳으로 걸어갔다.


[“엄마, 이 옷 예쁘죠?”]


엄마에게 가까이 걸어온 소피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소피의 밝은 표정을 보고 모린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엄마, 나 봐봐.”]


한복을 입은 소피가 자리에 서서 한 바퀴 휭 돌아보았다. 얇은 치맛자락이 둥글게 펄럭였다. 하나로 땋은 붉은 머리끝에 매달린 먹색 댕기가 달랑거렸다. 모린이 미소 지었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 소피.”]

[“그렇지? 엄마 것도 있어. 내가 골라놨어.”]

[“그래?”]


옆에 분홍빛 어른 한복 한 벌이 있었다. 모린이 치마를 살짝 만졌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섬세한 연분홍 꽃 자수에 그녀는 잠시 시선을 뺏겼다.


[“엄마, 내가 엄마 머리에 할 장식도 다 골라놨어요.”]

[“와…”]

[“얼른, 드레스룸 가서 갈아입고 오세요.”]

[“지금?”]

[“응.”]


모린이 망설였다.


[“소피, 아까 그분께 말하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요금도 내야 하고.”]

[“아냐, 내가 이미 다 말했어. 그리고 무료야.”]

[“정말?”]

[“응. 옷도 입혀주고 사진도 찍어줘. 다 무료야.”]

[“이런 게 다 무료라고?”]

[“응!”]


어리둥절한 모린이 물었다.


[“아니, 근데 넌 이걸 어떻게 알았어?”]

[“나? 난 다 알지.”]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어떻게야. 우리 학교 애들 다 알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친구들 다 알아.”]

[“그래?”]

[“난 엄마가 왜 모르는지 모르겠네. 얼른 옷 갈아입으러 가세요.”]


소피가 모린에게 한복을 주고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가게 했다. 소피가 뿌듯한 표정으로 마루 위에 서 있을 때, 혜진이 병풍 뒤에서 나왔다. 혜진은 나무 쟁반 위에 주스 두 병을 들고 있었다. 소피가 혜진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뭘요.”]


혜진이 탁자 위에 주스를 내려놓았다.


[“엄마가 나오시면 제가 머리를 땋아드릴 거예요. 그리고 이 끈을 매 드릴 거예요. 저랑 똑같은 거.”]


소피가 댕기를 들고 말했다. 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진을 보던 소피가 물었다.


[“그게 당신의 이름인가요? HJ?”]


소피가 혜진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고 물었다. HJ KIM이라 쓰여 있었다.


[“네.”]

[“HJ를 뭐라고 읽어요?”]

“혜진.”

“혜, 진?”

[“네.”]

[“아, 알겠어요. 당신의 이름은 김, 혜, 진 이군요.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을 ‘혜진’이라고 부르고요?”]

[“맞아요.”]

[“전형적인 한국인 이름이에요. 제 한국인 친구들 이름은 전부 세 글자예요. 한 글자는 가족 이름이고, 나머지 두 글자가 자신의 이름이고요. 이름만 봐도 한국인이에요.”]

[“맞아요.”]

[“한국인은 미들네임 같은 거 없죠?”]

[“없어요.”]

[“제가 하나 지어줄게요. ‘지니어스’. 어때요?”]


혜진이 웃었다.


[“이렇게 입는 게 맞아?”]


모린이 드레스룸에서 나왔다. 치마와 저고리가 그녀의 몸에 어색하게 걸쳐 있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혜진이 모린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모린이 소피를 보고 미소 지었다. 소피도 엄마를 보고 웃었다. 소피는 너무나 기뻤다. 이 묘한 스타일의 방 안에서 난생처음 보는 옷을 입으며, 소피는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마룻바닥도 저 푹신한 초록 매트도 마음에 들었다.


[‘정말, 다 좋아…’]


여기서 하는 모든 것이 좋았다. 이곳에서 이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은 소피와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유일하게, 오직 둘만이 할 수 있는 일.


[‘이 순간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한 손에는 댕기를 꼭 쥐고 남은 손으로는 빨개진 눈가를 비비며, 소피가 엄마를 향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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