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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May 09. 2021

1년만에 약을 끊었다

나의 정신과 진료 이야기

코로나19가 처음으로 세계를 뒤덮기 시작한 3월 경, 나는 온갖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페이스북 어플을 지웠고, 의도적으로 뉴스와 거리를 두려 했다.

동시에 흉통이 찾아왔다. 순간순간 찌릿찌릿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어느 날에는 공황이 찾아오기도 했다.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느낌. 

늦은 밤 응급실을 찾아 도로를 헤맸고, 코로나19가 겹친 상황이라 큰 병원이 아니면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피검사와 x레이 검사를 한 뒤 이상 소견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야 가라앉은 마음을 안고 새벽에 퇴원을 했다. 


공황을 겪은 뒤에는 정신과를 찾았다. 어린시절 공황을 겪었던 바가 있었으나 그 때는 병원을 찾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몇 년의 시간에 걸쳐 자연스레 이겨냈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 시절의 공황을 거의 10년도 더 넘은 시기에 겪었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어린시절부터 쌓여 있던 건강염려증이 코로나를 만나 커지면서 흉통과 공황의 원인이었다.


물론 흉통에는 다른 원인도 있었다. 식도염. 과거부터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할만한 증세가 있기도 했었고, 내과를 정기적으로 들러 식도염 약을 받았다. 무언가를 먹은 뒤 3시간이 지난 뒤에나 누울 수 있다고 했고, 흉통이 싫어 꼬박꼬박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지켰다. 누울 수가 없으니 식사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덕분에 살이 빠졌다). 하지만 식도염이 진정될 즈음에도 흉통은 남아 있었고, 공황까지 겪었으니 정신과를 찾을 때라고 판단했다. 마침 애인이 주변 지인의 사례를 들며 조언하기도 했다.


이 때는 괜시리 1주일에 1번 간격으로 온갖 내과를 들러 X-RAY를 찍기도 했다. 코로나19를 통한 폐섬유화가 진행되었다면 X-RAY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그 어떤 내과에서도 이상소견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 날도 X-RAY를 괜시리 찍고는 근처의 정신과를 찾았다. 3월,4월 이 즈음이었다. 정신과에선 먼저 스트레스/자율신경 검사를 했다. 팔과 다리에 무언가를 꽂고 가만히 있으니 분석을 해줬다. 


모든 수치들이 비정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자율신경계는 무너져 있었고, 스트레스 지수와 피로도도 무척 높았다. 평균 심박동 수도 높았다. 대부분이 '매우 나쁨'이거나 '나쁨'-'매우 나쁨'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다음 진료까지 심리검사지를 풀어오라는 이야기와 상담과 함께 첫 진료를 마쳤다. 씁쓸하면서도 마음이 홀가분했다. 내 상태가 별로란 걸 확인하니 속시원한 느낌이랄까.


이후 몇 번의 상담을 더 진행했다. 살아왔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자연스레 꺼내게 되었다. 나조차 잊고 있던 기억들도 말하는 도중에 떠오르기도 했고, 괜시리 감정이 복받치기도 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털어넣을 수록 마음은 더 편안해져 갔다. 약을 받기 시작했다.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약을 처음 먹고 나서는 졸음이 너무 심하게 찾아왔다. 일을 하기 어려울 수준이었다. 그 외에도 보통 약을 시작하면 생기는 간단한 부작용들이 있었고, 다행스럽게 며칠 만에 사라졌다. 혹시 공황이 찾아올 경우를 대비한 진정제도 받았다(다행히 진정제를 쓸 일은 없었다)


그 이후 2주-3주 간격으로 약을 받으며 1년을 보냈다. 상담할 내용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그간의 경과를 확인하고 새롭게 약을 받는 과정이었다. 다행히도 흉통도 차츰차츰 사라져 갔고, 코로나19도 2020여름에 주춤하고 있었다. 약 덕분이었겠으나, 예전처럼 코로나 공포증에 시달리지도 않게 되었다. 다시 뉴스도 볼 수 있게 되었고, 막연한 두려움 더불어 내가 코로나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행동도 사라졌다. 여름-가을 정도가 되었을 땐 완전히 이전으로 되돌아갔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약은 끊지 않았다. 선생님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겨울부터는 약을 조금씩 줄여 나갔다. 특정 약의 복용 양을 줄였고, 그러다 아예 하나씩 빼기 시작했고, 그 다음엔 다른 약의 복용을 줄였다. 그리고 올해 초에는 복용 주기를 바꿨다. 하루에 1회 먹었던 때를 지나 이틀에 한 번으로 늘렸다. 그럼에도 어떤 불편함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난 4월, 마침내 선생님은 이제 복용을 중단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만약에 비슷한 증세나 불안증이 다시 생기면 주저없이 다시 내원할 것을 당부했다. 꼭 약을 다시 시작하지 않더라도, 내원을 통해 호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내 1년 간 꾸준했던 루틴 하나가 끝났다. 2-3주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하고, 매일 밤 약을 먹고 잠드는 시기가 끝났다.


내가 먹은 약이 정확히 어느 수준인지는 잘 모른다. 나는 약을 먹으면서 큰 삶의 변화를 느끼진 못했다. 그러니까 흔히들 생각하는-항우울제를 먹으면 생각 자체가 사라진다거나 하는 것들- 변화는 겪지 않았다. 오히려 빠르게 안정을 찾은 뒤에는 일상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이어갔다. 가끔씩 과하게 밝은 듯한 느낌을 받기는 했으나, 약 때문이라고 생각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다녔던 정신과에는 늘 예약이 차 있었다. 2020년 한 해 코로나19가 사회를 덮치면서 항불안제 처방이 늘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당장 내 주변에도 다양한 수준의 코로나 블루를 겪은 사람들이 왕왕 있었다. 1년 간 정신과를 다니면서, 주변인들에게 정신과 진료를 적극 추천하게 되었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거나 다양한 이유로 불안감을 겪게 되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일들도 정신과를 다니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서다.


정신과를 다니며, 홀로 공황장애와 맞서 싸워야 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내가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 때의 나는 나 자신이 공황장애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공황장애가 유명해지면서 접하게 되었고, 그 때 내가 공황장애였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가벼운 수준의 우울증도 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불안정했던 시기였다. 그 어두운 통로를 혼자 빠져나왔던 내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정신과가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외롭고, 불안하고, 지치고, 힘든 존재들이다. 1년 만에 약을 끊게 되어 기쁘지만, 동시에 나는 언제든 다시 필요하면 정신과를 찾을 것이다. 혼자서 그 모든 짐을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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