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순간, 영원한 죽음
※영화 <원더풀 라이프>(2001)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하나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죽은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하나 골라야 한다.
그들이 림보에 머무는 6일. 그들에게 남겨진 일은 인생에서의 추억을 단 하나 고르는 일.
어린 학생이든, 젊은 청년이든, 늙은 노인이든 그들 모두에게 남겨진 일은 같다.
여러분이 선택하신 추억은, 저희가 최선을 다해 재현해드립니다. 그 추억이 여러분에게 선명히 되살아나는 순간, 그 기억만을 갖고 천국에 가게 됩니다.
기억을 고르면, 사람들은 그 추억을 선명하게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공기의 흐름, 주변의 풍경,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까지. 사람들은 각기 다양한 추억을 고른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순간, 주먹밥을 먹던 순간, 비행기를 타던 순간... 그 안에 있는 자신의 대역을 찍은 영상을 보고 '사라진다'. 림보를 떠난다.
<원더풀 라이프>가 담은 내용은 이보다는 더 많다. 하지만 이번에 집중하고자 하는 건, '죽음'을 연결하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림보에 머문다.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고른 후에야 진정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나는 이 설정을 보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바로, 추모공원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 화장을 통해 재가 된 유골을 담은 항아리가 있는 작은 한 켠의 공간. 그곳의 빈 공간을 메우는 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다. 고인이 생전에 즐거워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 고인이 생전에 행복을 느꼈을 물건들, 고인을 행복하게 해주었을 주변의 사람들. 젊은 날 환하게 웃고 있는 고인의 사진, 고인의 인생을 바친 결과물인 훈장, 열심히 쳤던 골프채, 받았던 상패, 생전에 아끼던 안경. 그 안에 고인과 함께 박제된 건 고인의 '행복한 순간'과 관련된 것들이다.
당장 고인과 직접적인 연결이 아니어도 좋다. 자식의 취업을 증명하는 명함, 원하는 대학으로의 입학과 같은 성취들도 좋다. 고인이 '행복해할만한' 것이라면, 그 안에 무엇이든 함께한다. 그 안에 넣지 못했다면, 가끔 찾아와 새로운 기쁨을 전한다. 고인이라면 이 소식을 듣고 행복해 했을 거야라는 마음과 함께.
<원더풀 라이프>와 추모공원의 공간은 한 가지를 말한다.
우리의 영원한 죽음은, 찰나같은 하나의 순간으로 완성된다고.
짧든 길든 한 생명의 인생을 정리하는 건, 결국 행복했던 하나의 순간이라고.
그 순간은 곧 그 삶의 이유가 되고, 삶을 설명하는 것이 될테니까.
50년이 지나서 내가 누군가의 행복었다는 사실을 알았어. 정말 멋진 일이야.
<원더풀 라이프>에서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행복한 순간 하나를 고르지 못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고작 그거를 골라야 하나 싶어서, 아니면 사실대로 말하기 부끄러워서, 아니면 자신이 없어서,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결국 림보에서 지내는 시간은 다시 말하면 자신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이 된다. 별로 대단할 것 없었던 것 같은 결혼생활에서의 의미를 찾아내는 등장인물처럼, 삶을 되돌아보며 결국 내가 찾는 '행복한 순간'이란 건, '내 삶이 가치있었던 이유'가 된다.
우리는 모두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걸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삶에 대한 물음은 죽음이 대답한다.
'영원한 죽음을 만드는 건 너가 소중하게 여기는 하나의 순간'이라고.
그건 대단한 성취일 필요도,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할 필요도, 누군가와 비교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그 순간이 가치 있었으면 된다. 그걸로 내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으면 된다. 내가 행복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죽는다면, 나는 무슨 순간을 고를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선택을 할까?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우리에게 직접 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등장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마지막에는 곧 우리에게 그 카메라를 향하는 것만 같다. "당신이라면, 무슨 순간을 고르겠습니까?"
아니, "당신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라고.
추모공원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남겨진 '행복한 순간'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삶을 떠난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함께 기록하고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