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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Apr 09. 2023

[에디터클럽]매일 그 자리를 지키는 비밀

<밀리의서재> 연재 아이디어 제안 

#이 글은 <밀리의 서재> 에디터 클럽 1기로서 작성한, '어떤 이야기를 연재하면 좋을지'에 대한 제안입니다.


#what. 누구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로 만나고 싶은가요?    

 


#한 가지 일을 30년 이상 이어온, 삶이 '업'인 사람들의 이야기


"저 사람은 어떻게 저기서 30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저 사람은 어떤 힘으로 매일같이 저 자리를 지키는 것일까?"  

평소에 곳곳을 돌아다니며 드는 궁금증이었다. 왁자지껄한 시장인 경우도 있고, 특정 업종이 모여있는 동네이기도 하고, 그냥 동네에 있는 낡은 가게이기도 하고, 호텔 지하에 있는 양복점이나 주얼리 가게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매 분 단위로 손님과 마주하고, 어떤 사람은 하루에 한 명의 손님도 오지 않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정교한 손 작업을 많이 하고, 어떤 사람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어떤 사람은 반복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매번 살짝 달라지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 다양하고도 복잡한 일의 종류를 넘어서면, '사람'이 궁금해진다. 저 일을 오랜 시간 하고 있는 저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  


그게 궁금한 첫번째 이유는, 바로 우리네 삶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마주하는 건 보통은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삶이다. 소수에 해당하는 특정 직업에 치우쳐져 있기도 하고, 비일상이기도 하고, 연예인들의 삶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책이라는 매체로는, 조금 더 일상이나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끌린다. 화려함이나 즐거움을 소비하는 데 TV나 스마트폰의 화면이 적절하다면, 조금 더 잔잔하고 느린 속도를 가진 텍스트로는 화려함보다는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을 마주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천천히,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다.  

긴 시간 한 가지 일에 종사한 사람들이 우리네 삶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들이 딛고 선 곳이 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장소가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를 지언정, 그들은 그 시간만큼 업의 기쁨과 슬픔, 삶의 희로애낙을 온 몸으로 느껴왔을 테니까. 그 이야기들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내 삶을 돌아보고 나아갈 힘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일상과 삶에서 마주하는 공간들에서 긴 시간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단순 '저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생각과 함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대한 응원이 된다. 그들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우리의 삶을 응원하고 위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큐멘터리 3일>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 역시, 평범한 우리네 일상 속을 3일 간 들여다봄으로써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발굴해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대단한 천재나 돈을 많이 번 구루의 비법은 아닐지언정, 진한 우리네 삶을 다뤘기에 우리는 그 영상에 담긴 목소리를 보며 서로의 삶을 위로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 '일의 가치와 의미'  


두번째 이유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다루고 싶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일'은 끊임없이 그 의미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사회가 변하는 만큼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관념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AI 시대가 다가오면서 '인간이 일을 한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물음도 늘어나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일을 긴 시간 해온 사람은 그 질문에 적절한 답을 줄 수 있다. 그들에게 일이란 무엇이었는지. 인간에게 일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어떤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인지.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어요'라는 답변도 좋지만, 그 다음을 다룰 수도 있다고 믿는다. 매일 출근하는 마음, 한 칸 밖에 되지 않는 공간에서 수십 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 안에 담긴 역사들과 감정들, 일로써 위로받고 일을 통해 내일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지, 어떤 힘과 동력으로 매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 앞으로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지금 인간이 마주하고 있는 '일'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일을 하는가.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일이 사람에게 주는 건 돈을 버는 행위 외에 또 무엇이 있는가. 수십 년 간 한 일을 한 사람은 어떻게 일을 하고, 그 일은 또 어떻게 사람을 바꾸어 놓았는가.   


"출근이 싫은 적은 없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출근을 하는지", "지겹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일을 하는 나만의 방법이나 마음가짐은 무엇이었는지", "이 일을 오래하며 생긴 나만의 전략이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인지", "큰 돈이 생긴다면, 이 일을 그만둘 것인지", "일을 하며 가장 즐거웠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지", "나에게 이 일은 무슨 의미인지", "만약, 일을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지"와 같은 공통 질문들을 통해, 연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의 의미를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조언도, 자기계발도, 자랑도, 권유도 아닌 담담한 기록  


그 이야기는 담담한 기록이 될 것이다. 이렇게 삶을 살아라고 하거나 하루에 잠을 몇 시간만 자면 성공한다고 하거나 나는 이렇게 100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이 직업이 너무 좋으니 이 직업을 하라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그저, 담담한 기록이다. 담지 않으면 사라지는 역사에 대한 기록. 그들에게도 너무 당연하고,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해서 무엇이 그 안에 담겨있는지 조차 모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 그 안에는 인터뷰이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조각들이 담겨 있을 것만 같다.  


한동안 <다큐멘터리 3일>에 나온 어부가 화제였다. '나에게도 꿈은 있었습니다'라며 그 자리에서 시를 읊는 어부에게 우린 감동했다. 사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움직이게할 만한 이야기들을 각자 품고 있다. 아직 그 누구도, 스스로도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꺼내고 싶은 그 이야기는,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30년 간 이불을 팔아온 상인, 5일장을 돌아다니며 매일 짐을 싸고 푸는 상인, 한 자리에서 국수를 만들어 온 사람, 긴 시간 사람들이 사랑하는 국을 끓여온 사람, 긴 시간 사람을 가르쳤던 선생님, 끊임없이 종이에 기록을 찍은 인쇄소의 주인, 동네의 어린이들을 키워온 태권도 관장, 한 동네를 계속 청소한 환경미화원, 그 동네의 코스를 매일 다녀온 버스 기사,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상가에서 긴 시간 옷을 팔아온 의류 상인, 꾸준히 그 자리를 지켰던 약국의 약사, 계속 사람을 맞이해 온 호텔리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일의 의미를 찾는 기나긴 여정에 함께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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