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by 다이안 Dyan

삶을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단백질 계산하는 삶


단백질 계산하는 삶을 살고 있다. PT를 받기 시작하면서 내 삶에 추가된 숫자와 계산이다. 오늘 먹은 계란, 닭가슴살 등을 생각하며 오늘 내가 적정량 이상의 단백질을 섭취했나 측정하고 있다. PT쌤이 말한 대로 계란을 2개 이상 먹었는지, 닭가슴살 대신 먹은 점심의 새우 크림 파스타가 과연 닭가슴살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지, 그럼 이제 저녁에 얼마나 뭘 더 챙겨 먹어야 하는지……. 이미 삶은 계산으로 가득한데, 하나쯤 더 추가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PT 수강 초기의 나는 안일했다.




계산의 끝판왕, 지출 그리고 예산


월급이 들어오기 무섭게 빠져나가는 각종 고정지출, 그 후 결괏값에 따라 나의 생활비와 저축 금액을 다시 계산하고 예측한다. ‘지난달에 놀러 나가느라 실컷 돈을 썼으니, 이번 달에는 덜 나가고 그만큼을 저축으로 돌려야지’ ‘월에 이만큼 저축하면 몇 년 뒤쯤엔 집을 사는 데 종잣돈으로 쓸 만큼이 되긴 할까?’ 이렇게 나름대로 각 월마다 대찬 계획을 하고 실행의 끝에 그려질 미래의 가능성도 잠시 상상해보곤 한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현실에 가까워지는 것은 극히 드물긴 하다. 사회초년생의 경제와 재테크 길라잡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엄격하게 내 예산을 조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일말의 여지도 없이 돈이 똑 떨어지면 너무 슬플 것 같고, 우울감과 절망은 극에 달할 것 같은걸. 나 같은 개복치에게는 좋지 않은 극한의 환경이 될 거다.




돈+, 돈++,돈+++


통장잔고의 계산 끝의 결론은 늘 똑같다. “조금만 더 있으면”. 거기다 자기 자신을 콘텐츠화하고 브랜딩하는 능력자들의 부수입 얘기들과 여기저기서 홍보하는 온라인 부수입처들의 이야기는 솔깃하다. 다들 참 열심히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나도 부수입이라도 있으면 좀 나을까 싶어 알바도 시작했다. 주말 중 하루 5시간. 주말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들일 겸, 푼돈이라도 벌어놓으면 관리비라도 충당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디서 말하듯이 푼돈은 모아봐야 푼돈이다. 한 달에 15만 원가량 되는 돈은 작은 듯, 큰 듯, 돈에 대한 갈증만 더 애태운다. 그러다가 취미로 시작한 것들의 가치를 다시 살려볼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첫 번째로 내가 눈을 돌린 것은 조카의 태명으로 끄적거리면서 캐릭터였다. 그걸로 이모티콘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게 잘 되면 나름 좋은 부수입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요즘은 이모티콘 시장도 레드오션이 돼버린 지 오래라 치열하기 그지없는 것은 잘 안다. 나름 아기 엄마, 아빠를 타깃화했으니 잘 나가지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두 번 째는 나름 전부터 구상해 온 내 글, 콘텐츠였다. 물론 제대로 써본 적도 없지만, 언젠가는 내가 그려온 주제의 콘텐츠들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었다. 반응이 나쁘지 않으면, 내가 여유가 있다면 진짜 책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쓴 글로 돈을 버는 것은 뭔가 즐겁고 뿌듯한 돈 벌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역시 삶에 계산이 들어서는 순간 싫어진다. 내가 즐거워하던 일들을 돈으로 계산하기 시작하니까 머리가 아프고 의욕이 뚝뚝 떨어졌다. 태어날 조카를 상상하며 그리던 설렘도, 내가 눈을 작게 그리면 진짜 조카 눈이 작아질까 싶던 우스꽝스러운 걱정도, 떠올리면서 작업하다 보면 웃음이 나곤 했다. 하지만 하나의 작은 사업으로 생각하니 욕심만 많아져선 작업이 끝없는 덧칠만 되고 끝이 나질 않더라. 그리고 ‘어차피 제안 넣어도 안 될 거야’라는 생각에 지배되니 게으름만 잔뜩 커져선 작업 자체도 저 멀리 미뤄두었다.

글쓰기는 그나마 영향을 덜 받기는 했다. 진짜 돈벌이가 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뭔가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이것도 흥미가 떨어지긴 마찬가지였다. 빨리 하나라도 더 써야 할 것 같은 그런 부채감이 생기니 더더 미루기 시작하고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취미가 일이 되면 취미를 잃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일이 되기도 전에 나는 취미를 놓아버리고 있었으니까. 어느 순간 내가 그린 그림이 이모티콘이 되는데 들어간 내 노동력을 계산하고 있었다. 하나 팔면 초콜릿 하나 값도 안 나오는 거 아니야? 란 생각을 하며 손익을 따지고 있었다. 책을 만들었는데 다 팔지 못 해서 내가 내 돈 들여 만든 짐덩어리가 되면 어떡하지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계산이 삶에 들어오니 회색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었다. 칙칙하고 먹구름만 잔뜩 그려놓은 그런 도화지.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나에게 즐거움과 탈출구였던 취미를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상상한 대로 잘 된다면 커피값이나 벌 수 있게 되어 그것만 한 기쁨도 없겠지만, 그렇지 않음 어때! 내가 조카를 상상하며 떠올린 설렘, 사랑, 기대, 뿌듯함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큰 걸! 내가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가며 얻은 안정감은 말할 수도 없지! 담아뒀다면 나를 더 우울하게 했을 수도 있는 생각을 덜 어내며 사유하는 인간이 되어봤으니 그 정도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닌가?


여전히 나의 삶에서 계산은 가슴팍을 꽉 조이는 브래지어 같다. 더 좋은 모양의 삶을 위해 조이고 모으고 난리를 치는 모양새가 비슷하다. 근데 그렇게 아무리 조이고 모아도 브래지어를 벗으면 본래 타고난 모양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때 가장 생활하기 편한 순간이 된다.

계산과 열정이 잘 맞는 사람들은 그렇게 즐거움과 함께 차곡차곡 부도 쌓아 올리겠만, 나는 타고나길 그런 유형의 인간이 아닌 것을 어쩌겠는가. 날 때부터 돈 되는 분야와 방법은 모조리 안 맞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운명 아니겠는가. 그런 운명을 거부하고선 계산을 하며 내 삶을 재단하는 동안 본질적인 행복감과 즐거움은 조금씩 파괴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 미래와 현재를 놓고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계산은 버리고 그저 이 삶을 더 즐겁게, 재밌게 살아내기로 했다. 그러다보면 좋은 것에는 좋은 것이 깃들고 따른다고, 어디선가 금전운이 슬며시 껴들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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