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하게 해 주세요

by 다이안 Dyan

딴짓하게 해 주세요

그동안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게 가장 필요하다고 깨달은 것은 "딴짓하는 시간"이다. 여기서의 딴짓은 업무 시간 중에 하는 딴짓이 아닌 "본업 외의 부수적인 취미 거리"를 말한다. 업무 또는 업무 외의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부담감, 좌절감, 우울함 그 외 알 수 없는 온갖 감정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는 딴짓만 한 것이 없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고, 산소 농도가 낮으면 질식으로 사망하듯 감정에도 치사농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딴짓이란, 나의 농도 짙은 우울과 한껏 낮아진 자존감으로부터의 환기 작용이다. 내 감정을 환기시키며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라는 숨구멍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나의 감정이, 스트레스가 치사농도가 되지 않도록, 내가 그 감정에 잠식돼서 무너지지 않도록 한다.


그렇다. 딴짓은 나의 직장생활에 있어 숨구멍이다. 고래가 바닷속을 헤엄치다 올라와 크게 숨을 내뱉듯이, 저 아래서 숨죽이며 일하다가 마침내 뿜어내는 나의 큰 한 숨. 그 숨에 들이마신 산소로 내일, 모레의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때로는 잔뜩 꼬여버린 털실 같은 인간관계, 이분법으로 분열하듯 미친 듯이 늘어나는 업무, 그에 따르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끊임없는 프랙탈 구조를 만들어 반복 안에 자신을 가두며 한계를 만들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딴짓은 하염없이 그 한계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돕는 로켓이기도 하다. 사회가 또는 나 자신이 만들어 버린 반복과 유사성의 구조로부터의 탈출. 그렇게 감정도 생각도 환기시키게 만드는 것이 바로 "딴짓"이다.


딴짓의 가장 핵심은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전문가가 될 필요가 없다. 딴짓을 하며 내가 느껴야 하는 감정은 안정과 행복이다. 내가 생각하는 안정과 행복을 맛보기 위한 딴짓의 조건은 아래의 3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 째, 내가 잘해야 된다는 압박과 뒤쳐지면 안 된다는 경쟁심을 느끼지 않아야 할 것. 즉, 스트레스받지 않아야 할 것.

둘째, 작은 단위의 결과물을 만들거나 여러 하위 단계의 목표를 달성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거나 나 자신을 칭찬할 수 있을 것.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셋째, 내가 그 활동을 할 때만큼은 잡념을 잊고 웃으며 즐길 수 있거나, 오롯이 그것만을 하느라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는 표정이 나올 만큼 몰입하는 것.



서론이 길었지만, 그래서 소개하는 요즘의 내 딴짓은 3가지다.

캐릭터 끄적거리기

글쓰기

책 읽기

세 가지의 공통점이라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이고, 내가 잘하고 싶은 것들이란 것이다.





캐릭터 끄적거리기

기억도 잘 안 나는 4~5살 꼬꼬마일 때 패션디자이너가 되겠다며 동생의 티셔츠 밑단을 세로로 잘근잘근 잘라내서 태슬 달린 카우보이 티셔츠를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중학교 때 처음 가 본 유럽에서 건축물에 홀려 건축가가 되고 싶기도 했고, 한창 연예인을 좋아하던 사춘기 때는 포토샵을 익혀 각종 이미지와 인쇄물 만들기에 몰두하곤 했다. 그렇게 디자인, 예술분야는 계속적인 내 관심사였다.

최근에 메신저앱용 캐릭터 이모티콘을 만드는 강의를 듣고 태블릿으로 끄적거리는 중이다. 때마침 조카의 태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초안을 그려놓기도 했는데 강의에서 제공되는 밑그림에 얹고 구체화하면서 완성했다. 그리는 내내 내 입꼬리는 귀에 걸린 채 "세상에 너무 귀엽다!" "이게 진짜 내가 그린 거라고?" "미쳤다 미쳤어"를 끊임없이 내뱉고 있었다. 마치 그 캐릭터가 조카인양 사랑스럽게 여겨짐과 동시에 그동안 잠재워 둔 내 그림 실력을 깨운듯하여 뿌듯함에 휩싸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글쓰기

하루 이동시간만 5시간에 달하는 출장을 소화해 내기도 버거웠던 시기, 나의 숨구멍을 열어 낼 시간이 없어 답답함의 농도가 치솟았다. 그 농도를 틈틈이 낮추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에 번뜩 떠오르는 문장들을 부리나케 핸드폰에 기록해두곤 했다.

부업과 부캐가 판을 치는 요즘, 나에게도 본업을 벗어난 무언가는 소중하다. 글을 쓸 때만큼은, 그렇게 나는 작가가 된다. 사무직 회사원을 벗어나, 새로운 탈을 쓰고선 새로운 내 역할에 몰입한다. 그리고 그 순간이 좋다.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조금 안 풀려도 걱정이 없다. 의무감에 짓눌리지 않으니 여유와 자유는 넘치고 욕심은 모습을 감춘다. 틈틈이 그저 생각나는 것을 그때 기록하고, 각 잡고 책상 앞에 앉으면 한껏 몰입해서 남은 부분을 마무리한다.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질 수 있는 이 딴짓의 즐거움에 요즘은 흠뻑 빠져있다.



책 읽기

정적이기 그지없는 나의 마지막 숨구멍이다. 이상하게 책을 구경하는 건 좋다. 요즘은 책 표지도 디자인과 미적인 부분이 강조되면서 서점에 가면 미술관에 간 것처럼 책을 구경하곤 한다. 나의 취향은 책과 음악에선 비슷하다. 내 취향에 맞는 것이 걸리면 규모와 상관없이 미술관을 찾아다니듯, 문구류까지 있는 큰 서점부터 독립서점까지 잘 다닌다. 나에겐 미술도 책도 그냥 좋으면 좋은 거다. 에세이를 읽을 때면, 누군가 나와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어 좋다. 전문 분야의 책을 읽을 때면, 정적인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야를 확대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앉아서 눈으로 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소박하게 나의 딴짓들과 함께 여는 나의 숨구멍.

올해도 열심히 딴짓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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