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독 벚꽃이 일찍 폈다. 변화무쌍한 요즘 기온에도 불구하고 벚꽃은 꿋꿋이 고개를 내밀어 세상을 분홍으로 물들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 벚꽃은 늘 중간고사를 앞둔 시기에 절정을 이뤄 공부하기 싫은 마음에 불을 지피곤 했다. 그런데 지구가 기온을 쥐락펴락하며 온기를 한껏 빨리 들고 오는 요즘은 이젠 그것도 옛이야기가 되는 걸까 싶다. 한 달가량 일찍 핀 벚꽃 덕분에 올해의 대학생들은 십 년 전의 대학생들보다 공부와 꽃놀이 사이의 갈등 없이 마음 편히 놀고,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조금 부러웠다.
나에게 벚꽃 철 SNS를 장식하는 분홍빛 관광지들은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산벚나무, 왕벚나무 같은 벚나무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벚꽃은 늘 내가 시험, 과제 등으로 잔뜩 날이 서 있을 때 유유히 피어나선 홀로 그 분홍빛 여유를 뽐내며 사람들을 홀리기 바빴다. 찰나라도 즐기려는 나의 벚꽃놀이는 집 앞 공원을 거니는 정도의 짧고 가까운 인스턴트 벚꽃놀이였다. 그러다 내가 한숨 돌리고 주변을 살피면 벚나무는 이미 초록 잎이 무성해져 있었다. 그렇게 늘 벚나무보다 한 박자씩 느리게 여유로워지는 나를 기다려주는 벚꽃은 따로 있었다. 겹벚꽃 나무, 바로 너였다.
대학교 때 카메라에 줄곧 담던 너는 빨간 벽돌 건물의 학교 박물관 앞에 있었다. 캠퍼스 내에 몇 안 남은 오래된 빨간 벽돌의 건물. 어떤 전시가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는 소외된 건물인데 봄만 되면 너로 인해 모두가 그 존재감을 다시 상기시켰다. 고전적인 빨간 벽돌을 배경으로 분홍 꽃방울을 잔뜩 매달고 있는 너를 보자면,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떠올랐다. 박물관 앞의 너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초월해 사랑을 나눈 샹룬과 샤오위를 그리곤 했다. 그 둘이 마음을 나누던 학교처럼 빨간 벽돌 건물이 옛날 학교의 느낌을 내고, 분홍 꽃송이들이 영화 속 연인의 풋풋한 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법학관 강의를 가는 길에 필름 카메라를 챙겨 들고 가선, 너를 담아내려 했다. 그 시절 그 풋풋한 사랑의 느낌을 담아내려 요리조리 너를 찍으며 필름을 감고 또 감았다. 그렇게 너에게 흠뻑 빠진 날은 귓가에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수록곡을 달고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내가 봐온 나무인 너를, 숲처럼 넓은 공간에서 잔뜩 만난 그날의 첫 느낌은 잊을 수 없다. ‘황홀경’ 그 자체였다. 분홍색이라면 치를 떨게 싫어하는 나인데 네가 수놓은 분홍색의 향연에는 감탄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벚나무는 잘게 찢은 한지 같은 여린 벚꽃잎을 비처럼 흩날리며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와는 다르게 겹벚꽃 너는 복숭아 같은 꽃송이들을 용처럼 꼬불꼬불한 가지를 따라 늘어뜨린다. 너의 아래에 자리 잡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잘 익은 복숭아처럼 풍성한 너의 꽃이 피란 하늘을 가린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함박꽃이 내리는 것 같다.
너의 숲이 이루는 장관도 매력이지만, 내가 너에게 빠진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너는 여리하게만 느껴질 분홍색을 강하고 무게감 있게 그려낸다. 강하게 그은 수묵화의 한 획 같은 너의 굵은 가지가 분홍을 선녀에서 나무꾼으로 바꾸었다. 작은 복숭아 같은 꽃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너의 가지에서 단단한 책임감이 보였다. 나무의 가지는 하늘을 향해 뻗는다. 하지만 너의 가지는 꽃과 함께 땅을 바라보고 있으니, 너의 처진 가지를 보면 얼마나 무거울까 하는 안쓰러움도 든다. 하지만 그런 책임감이 모여 길을 따라 꽃 터널을 만들기도 하고, 너를 가까이서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꽃을 내려 보이는 배려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내가 사랑한 너의 단단한 분홍은 봄을 놓치지 않도록 올해도 농도 짙게 내려앉는다.